프로그램 노트: 시국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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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의 촛불이 모였던 광장을, 그 시국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들이 말하는 ‘우리’에 내 자리는 없었다.”
광장에 ‘시민’으로서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은 ‘시민’이 아니었다. 불편한 세상을 바꾸자는 그 속에서도 편안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의 광장에 내 자리는 없어도, 여성 혐오는 있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과 권력자를 ‘미스 박’, ‘~년’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야 했다. 그들은 광장에 나온 나를 “기특하다”고 했다. 동등한 위치의 시민이 아닌, ‘젊은 여자’로 나를 대했다. 혐오는 이렇게 나의 외침을 틀어막았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는 누구랑 싸우는 거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건 없었다. 우리에겐 이 혐오에 저항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함께 변화를 외쳐도 늘 배제되었던 경험이 모여, 서로를 지키겠다는 바람을 일으켰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뒤로 미뤄졌던 이야기들이 여기 모여, 이 혐오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부르짖었다. 이런 외침들이 하나, 둘 모여 ‘페미존’을 만들었다. 광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광장에 설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다시 말하려 한다. 또 다른 변화가 움트던 그날의 광장에, 페미니스트로서 모인 우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로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에만 남겨둔 이들이 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배제한 여성은 없는가. 이 물음을 던지고자 여기, 그날의 광장을 다시 불러온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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