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에게 소성리는 단순한 마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옥한 토지와 깨끗한 공기가 있는 하늘, 팔부녀회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살아온 역사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가 기습 배치되며 모든 게 달라진다. 지금이 “꼭 6.25 긑다”고 하는 할머니들에게 사드는 전쟁과 다름이 없다. 평화를 위해 무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고, 무기를 설치해서 이 땅을 떠나야 한다는 말도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긴 세월 동안 논농사를 주로 지어온 소성리 할머니들에게 사드가 군병력, 인구 밀집 지역, 핵심시설 등을 방어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설치한다는 사드야말로 애써 지켜온 삶의 흐름을 깨는 ‘무기’이다. 군병력도 없는 소성리는 그렇게 무기가 설치되어 전쟁터가 되었다. 정작 사드가 지킨다고 하는 핵심시설 지역 거주민들은 ‘위험한 무기’를 원하지 않았다. 누구도 전쟁을 겪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외면한다. 결국 사드는 ‘할머니’,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는 소성리로 밀려나 배치되었다. 할머니들은 “우리 사드병 다 들었다!”하며 밭을 매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소성리를 지키기 위해 달려간다.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일상이자 투쟁이다. 이웃과 잠시 수다를 떨다가도 눈 돌리면 곳곳에 사드 현수막이 걸려있다. 호미를 쥔 손으로 농사를 짓기도, 저항하기도 한다. 누군가 도둑처럼 소성리에 사드를 배치했고, 할머니들은 그곳을 지키고 있다. 무궁화 꽃 앞에서 활짝 웃으며 만세를 부르는 동안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소성리로 계속 뻗치고 있다. 심지어 사드철폐를 약속했던 정부는 종전 선언을 예고한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사드 부지공사를 강행한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구호와 함께 할머니들은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진밭교를 꿋꿋이 막아선다. 푸른 하늘 밑에서 이웃들과 오순도순 참외를 까먹던 소성리를, 마을 곳곳마다 기억이 담겨있는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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