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사망원인: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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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진단받은 병과 처방받는 약에 대해서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잘 알지는 못해도 사람의 몸과 건강을 가지고 쉽게 장난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이 세상이 아무리 자본의 논리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분명 의학과 제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니까.
그런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고 있다. 감독의 언니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도 의문을 해결해주지 않았기에 동생은 언니의 유품인 반지를 품은 채 10년 동안의 기록을 시작한다.
이상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포착된다. 항정신질환 의약품의 부작용엔 돌연사가 포함되어있고 그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너무나 많다. 놀랍게도 정신과 의사들조차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면엔 정신의학계의 성경과도 같은 DSM과 제약업계가 긴밀히 연결돼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판매하고자 하는 약품에 따라 정신병의 범위는 늘어만 간다. 이렇게 DSM을 등에 업고 만들어진 약은 의사의 눈을 가린 채 불티나게 팔린다.
이런 의심쩍은 상황을 파헤쳐보니 제약업계를 둘러싼 더욱더 촘촘한 자본의 톱니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독점판매권을 위한 로비, 불법마케팅 등 ‘생명’과는 거리가 먼일들이 제약회사, FDA, 학회 사이에서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 연쇄 과정 속에서 제약회사는 약을 최대한 많이 팔면 그만이고 환자들은 약을 구매할 ‘소비자’일 뿐이었다. 사람들을 살릴 줄로만 알았던 진단과 처방은 열심히 자본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자본의 톱니는 의료계라는 전문적인 영역 안에 은밀히 숨어버린다.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날이 갈수록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늘어만 간다. 그 정보의 간극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언니를 그저 떠나보낼 수 없었기에 시작한 움직임이었다. 언니의 반지를 빼지 않았던 건 죽음의 원인과 이 거대한 구조를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약속과도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것만 같던 적막을 하나둘 벗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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