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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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폭도로 몰려 사라진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제주 여성의 이야기다. ‘남성’만 벌초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어 묘소에도 갈 수 없었다. 같은 추모도 어떤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여성들은 귤을 따는 손으로, 산속을 걷는 발걸음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한다.
아직까지도 제주4.3을 앞장서서 증언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를 다르게 겪은 ‘남성’이다. 잡혀 성고문을 당하거나 죽을까 두려워 일본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더더욱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한국이 이들을 잊었듯, 이들도 한국어를 잊어간다. ‘증언자’는 한정되어 있다. 고통을 ‘통용될만한’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만 증언자로 승인된다. 풀어낼 수 없는 아픔, 굿으로 가슴을 쳐야만 사라질 기억은 말하면 안 되거나 말할 수 없는 기억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자의 한’ 정도로 치부된다. 같은 때를 말하면서도 이것은 왜 증언도 역사도 되지 못하는 것인가.
비념은 죽은 사람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한 굿은 비념을 지내려고 모인 할머니들이 눈물을 찍어내고 말을 뱉어내는 시공간을 잠깐 열어낸다. 죽은 이들을 위해 부르는 창은 산 사람을 위한 것에 가깝다. 기억의 공간은 다른 목소리를 빌려 열린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서 제주4.3의 아픔을 청산한다는 지금도, 4.3 때 일본에 피신해 국적이 남한이 아닌 ‘조선’인 사람은 한국에 올 수 없다. 한국은 여전히 4.3에서 자행된 학살을 국가 정책으로 밀어붙였던 ‘대한민국’ 위에 서 있다. 그뿐인가.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도 남성에 의한 성폭력을 ‘어쩔 수 없는 일’로 가벼이 다루고, 남성의 업적만을 기록한 역사를 ‘진짜 역사’로 만드는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4.3을 기억한다.
제주4.3을 다시 기억하는 오늘, 부유하는 기록들은 누구의 힘을 빌어 여기까지 드러난 것일까? 무엇을 위해? ‘화해’나 ‘진짜 기억’을 위해? 지금까지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오롯이 담고 있지 못한 기록, 남성이 붙잡은 기록물 아래에서야 복기되는 시간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다시 생각한다. 겹겹이 덮힌 기억들 아래에 있는, 혹은 이 기억들을 가로지르며 존재할 수 없는 기억이라고 여겨졌던, 배제된 이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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