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휴대폰, 노트북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의 핵심부품이다. 반도체 공정에는 단 한 톨의 먼지도 허용되지 않는다. 방진복과 클린룸이 추구하는 강박적인 청결은 오직 제품만을 위한 것이다.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유해화학물질들은 모든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반도체 세정액에 포함된 벤젠은 백혈병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다. 노동자들은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져도 계속 일해야 한다. 빈자리는 금세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진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도시로 온 젊은 농민공들은 도리어 생계를 위협할 정도의 돈을 병원비로 내야 한다.
벤젠 사용 중단에 드는 제품당 추가비용은 고작 1달러. 하지만 하루에 오천 번씩 맨손을 유독세정액에 담가야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은 그 가치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직원들의 부(富)와 건강(康)을 약속하는 팍스콘(富士康)에서 수십 명의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팍스콘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도, 팍스콘의 최대 원청인 애플도 책임을 부인한다. 회사들은 시작도 끝도 없는 거대한 자본의 톱니가 되어 빈틈없이 돌아간다. 그 속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어렵게 받아낸 직업병 진단서는 갈 곳을 잃는다.
중국노동자단체는 홀로 아픔을 감당하던 반도체산업 산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모은다. 피해자들은 서로와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가 ‘직업병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애플,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개인에게 퍼붓던 책임의 화살을 고용주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벤젠 금지를 외치며 견고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에 빈틈을 만든다.
그러한 외침 속에서도 팍스콘 공장에서는 여전히 벤젠 냄새가 난다. 농민공들의 손에도, 아이폰과 갤럭시를 사용하는 우리의 손에도 같은 벤젠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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