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기억을 말한다. 죽은 이들의 이름은 물론,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그날 어디서 뭘 했는지 이야기한다. 기억을 말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몇 명을 몇 날 며칠에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왜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두 기억의 간극은 누가 만든 것일까. 연간 3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방문한다는 베트남. 감독은 베트남을 익숙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색채로 담아낸다.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생존자이자 유가족인 응우옌 티 탄은 그날 한국군의 총에 맞았고, 그 흔적이 지금도 몸에 남아있다. 목격자 딘 껌은 한국군이 그날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총으로 쏘는 것을 ‘내가 봤다’고 수어로 전한다. 유가족 응우옌 럽은 생존자인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해 준 얘기들을 들려준다.
세 사람의 기억은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죽은 사람과 죽음을 목격한사람은 있는데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는 ‘적이기 때문에 죽였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위령비에 빼곡한 아이들, 여자들, 노인들은 정말 ‘적’이었을까? ‘국가의부름’이라는 명목으로 총을 겨눈 사람과 그 총구 앞에 서야 했던 사람들.
서로가 왜 그런 식으로 만나야 했는지 따져 물어 진실을 밝히는 것은 또 다른 국가폭력과 학살을 막기 위함이다. 피해자가 원할 때,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실규명, 범죄인정 그리고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살을 기억하는 이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기억의 문을 연다. 우리는 그 문안으로 들어선다. 문 안에서 그들의 기억을 마주했다면,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의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총을 쥔 이들이 전쟁의 명분과 경제적이득만을 역사로 기록했다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들을 엮어 ‘기억의 역사’를 쓸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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