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춘자’에게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해 15년간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나에게 뜨개질은 삶의 일부다. 뜨개질로 위로 받고 뜨개질로 세상을 만나며 어른이 되었다. 거기에 ‘여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건만 세상은 뜨개질을 하는 한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알고 보니 되게 여성스럽다?”
처음 춘자가 뜨개질을 알려준 이유가 ‘신부수업’의 일종이기는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 서라고 할 때마다 위화감을 느끼던 어린 시절의 한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한나는, 코바늘계 끝판왕인 ‘만다라 매드니스’를 뜨겠다 다짐하는 어른이 된 한나는 할머니가 가르쳐 준 뜨개질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창조적인 힘을 탄생시켰다.
한나는 춘자가 선물해준 ‘뜨개질’이라는 자산을 소중히 여기되 여자와 남자의 경계의 둘레를 넘나들며 방 한가득 뜨개 세상을 창조한다. 과거의 기억이 실에 엮어 되살아 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도, 전복하는 마음도, 소심한 마음도, 젠더를 교란하며 다시금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도 되살아 난다. 뜨개질을 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처럼 한나의 세상도 순탄치만은 않고, 뜨개질에 형형색색의 여러 실이 필요한 것처럼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병립한다. 그러나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나의 정체성을, 교차하고 겹쳐지는 수많은 ‘나’를 우리는 긍정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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