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퀴어다. 그게 너와 내가 같다는 뜻일까? <귀귀퀴퀴>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시작부터 별별 말이 흘러 나온다. 헤테로는 무엇인가. 팬로맨틱, 팬섹슈얼은 무엇인가. 전애인이 트랜스젠더였다는 사람과 그게 무엇이냐 묻는 질문들. “저렇게 살아야 퀴어인거야?” 우리의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
퀴어는 간결하지 않다. 동일하지 않다. 너와 나는 다르다. 단일한 “퀴어로움”이란 없다. 내가 욕망하는 섹슈얼리티와 네가 욕망하는 섹슈얼리티는 다르고 내가 살아온 퀴어의 방식과 네가 살아온 퀴어의 방식은 다르다. 여기저기 “판”에서 떠도는 “용어”에 무지한 퀴어도 있고 정형화된 이미지에 반박하는 퀴어도 있다. 동성애자만 퀴어인 줄 아는 퀴어와 퀴어 내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게 되는 퀴어, 거리에 나가 투쟁하는 퀴어가 있다면 인권에 관심이 없는 퀴어도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퀴어’로 통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퀴어’는 끝없이 역동하고 움직이는 관계이자 정치의 동사이기도 하다. 각자 맺어온 관계의 방식과 커뮤니티가 다르고 욕망하는 것이 다르고 되고 싶은 것과 삶의 주요 이슈가 다르다. 우리가 퀴어로 묶여 힘을 모을 수 있으려면 각자의 고유성을 지키며 갈라질 수도 있어야 한다. ‘퀴어’는 하나로 정의되기 위한 단어가 아니라 끝없이 확장하고 관계맺기를 위한 장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질문한다. “그래서, 퀴어는?”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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