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인권해설

나는 아직도 2011년 3월 11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TV를 보던 중 갑자기 하단에 일본 동부에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자막이 송출됐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붕괴됐다는 소식이 추가로 전해졌다. 전례 없는 강진과 방사능 누출의 재난 상황이 이어지자 ‘일본의 미래’를 분석하는 논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일본 장애 시민의 삶’을 다루는 소식은 따로 접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동일본 대지진 재난을 그저 일본의 위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마주하게 된 이 영화는 오랜 시간 ‘핵발전소 붕괴’, ‘강진’, ‘쓰나미’ 등 피상적인 단어로 기억하던 동일본 대지진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장애인의 생활 세계에서 조명한다.

특히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동일본 대지진 속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일본 장애인과 가족의 고군분투기가 너무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지난 2월 청도대남병원 내 코로나19 집단 확진 사례를 시작으로 지속되는 장애인 차별과 건강 불평등의 문제와 유사했다. ‘재난 상황 시의 패닉, 활동지원인 없는 상황 속 고립된 장애인에게 예견된 참사, 비장애 시민에게 폐를 끼칠까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장애인의 모습, 대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물리적⋅정보 접근권의 박탈, 재난 시 매뉴얼의 부재, 중증장애인을 배제하는 행정, 미등록 장애인에 대한 무대책 등’ 영화 속에서 마주한 약 2011년 일본 재난의 모습은 2020년 한국 재난의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지진과 감염병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재난의 양상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재난은 우리 사회에서 은밀한 시혜와 동정의 모습으로 감추어졌던 장애인 차별과 배제가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재난 시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는 나쁜 장애인’으로 비추어지고, 장애인 당사자는 ‘비장애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며’ 고립과 죽음을 택한다.

재난은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 다만 드러낼 뿐이다. 사회의 위선을 걷어낼 뿐이다. ‘나중에’로 적당히 미루어지던 장애인의 존엄성이 노골적으로 무시된다. 그 재난이 지진이건, 감염병이건, 그 국가가 한국이건, 일본이건 시공간과 관계없이 각자도생이라는 극단적인 원자적 상황 속에서 장애인은 지워진다.

누구라도 환영하지 않을 소수자의 고난과 죽음을 조명한 영화, 재난 앞에서 쓸려가는 사람들, 고립되는 사람들과 지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가볍지 않은 영화’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할까. 마주하기로부터 연대의 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난 속 배제된 이들의 삶을 마주하고, 고립되어 두려움을 느끼고 슬픔을 감내하는 얼굴을 외면하지 않을 책임의 무게를 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지진 재난 속에서 구체적인 아픔을 마주하는 것, 10년 전 일본의 재난을 목격하면서 현재 코로나19 재난 속 드러난 장애인의 억압을 연결해 상상하는 것. 전지구적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은밀하게 감추어졌던 차별이 노골적인 혐오와 배제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다 함께 ‘그만’을 외쳐야 한다.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단호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공존을 꿈꿔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실천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상을 추천한다. 연대는 생생한 아픔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변재원(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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