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점령의 폭력에 자긍심은 없다
–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며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침탈로 그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불법군사점령은 76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10월 시작된 가자지구 침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세 달 전 이미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피난에 피난을 거듭하며 잠시 숨을 고르던 최남단 라파도 지금 공격 받고 있습니다. 이 침공은 그 어떤 방어 행위도 아니며, 명분도 없습니다. 오직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역사를 삭제하기 위한 집단학살이며 인종청소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공범입니다. 이들의 전방위적인 군사적 지원과 엄호가 없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 국가는 당장의 공격을 멈출 수 있을 휴전 결의안 통과를 거부권, 기권 등으로 저지해온 국가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학살을 멈춰달라는 자국 시민의 요구를 묵살하며 공권력을 투입해 무작위로 연행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6월은 1969년 6월 28일에 뉴욕 경찰의 부당한 폭력에 맞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하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입니다. 우리에게 6월은 벅차고, 설레는, 자긍심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6월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주한미국/영국/독일대사관은 파트너십 기관으로 참여해 공동부스를 운영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이미 성소수자 친화적인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내세우며,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는 ‘핑크워싱’ 전략을 오랫동안 사용해왔습니다. 2016년 서울인권영화제가 영화 <제3의 성>의 상영을 취소한 이유도, 이 영화가 핑크워싱 전략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 점령에 공모하는 기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유무선상으로 계속 접촉을 시도하며, 상영 취소를 취소하라고 은근한 압박을 건네오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성소수자는 거의 항상 마지막까지 가려져 있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에게 건네지는 손길은 물론 정말 소중합니다. 연대의 행동,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가 퀴어의 일상을 바꿉니다. 그래서 어떤 권력은 퀴어를 좋은 미끼로 삼기도 합니다. 성소수자에게도 손길을 내미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내세워 ‘좋은’ 권력으로 스스로를 세탁합니다. 그렇기에 핑크워싱은 오직 이스라엘의 전략이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기업에서, 정부에서 핑크워싱 전략을 활용합니다.
학살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는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관이 “우리는 성소수자를 지지합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 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는 HIV 감염인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초국적제약기업입니다. HIV/AIDS 예방약과 치료제를 비싼 가격에 팔아 접근을 어렵게 하고, 공공의료를 망치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를 팔아 폭리를 취하고, 이 값으로 세계 곳곳의 퀴어퍼레이드를 후원합니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파트너십기관으로 참가하여 부스와 퍼레이드 차량을 운영합니다.
어떤 권력과 함께 하게 되면, 그럼으로써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할 수 없게 됩니다. 그 권력이 그럭저럭 괜찮아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좋은’을 하기 때문에 함께 하게 된다면 그 권력으로 인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무슨 선택지가 남을까요?
성소수자의 자긍심은 누군가의 손길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는 피와 땀과 눈물로 우리는 우리의 자긍심을 만들어왔습니다. 퀴어는 경계의 바깥에서, 혹은 변두리에서, 마지막 남은 사람으로, 또는 남겨진 사람으로, 차별과 배제를, 혐오와 낙인에 맞서 스스로의 존재를 일구어 왔습니다. 퀴어는 해방을, 평등을, 자유를, 정의를 함께 만들자고 외쳐왔습니다. 주류의 권력을 내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긍심이 자본과 점령의 폭력을 가리는 장막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핑크워싱, 그리고 이에 맞설 BDS운동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과 함께 항의행동으로 자본과 점령의 폭력에 맞설 예정입니다.
학살 공모를 중단하지 않는 미/영/독, 건강을 빌미로 폭리 창출을 계속하는 길리어드에 요구합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감염인의 목숨값으로 우리를 구매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점령과 배제의 소비자가 아니며 이를 방관, 묵인, 이용하는 자본의 고객이 되길 거부합니다. 우리가 가부장제와 성별이분법, 이성애중심주의의 공고한 벽에 쏘아올리는 돌은 팔레스타인을 두른 장벽에 쏘아올리는 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놓쳐버린 동료들과 반복되는 죽음과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함은 팔레스타인의 퀴어를, 민중을, 올리브나무와 동물을, 그 땅과 하늘 사이 모든 존재를 애도하고 기억함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동지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전합니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모두의 해방을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2024. 5. 30.
서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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