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한 자리이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떠나간 사람을 이야기하고 그리면서 충격과 슬픔을 달래는 시간이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장례식은 그러한 자리가 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법 제도들은 성소수자들이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어렵게 만든다. 장례 주관자는 혈족을 중심으로 순서가 정해져 있고, 유언을 통해 지정하더라도 강제력은 없다시피 하다. 생전에 존재가 지워지는 것에 고통받던 사람들은 애도의 자리에서조차 존재가 지워지기 일쑤고 ‘동료’들은 애도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함으로써 애도의 권리를 박탈당하며, 떠난 사람은 원하지 않는 ‘이름’들로 불리며 애도 받지 못한다. 성소수자들이 죽음과 애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른다.
대안적인 장례식은 ‘대안’이기에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햇살 비치는 창가에 자신이 만든 관을 놓고 누워서 애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영화의 장면처럼. 성소수자가 배제당하는 일반적인 장례식과는 다른 모습들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제대로 된 애도의 순간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저 ‘대안’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법 제도를 벗어나서 마련된 자리는 부족한 마음의 일부를 채워줄 수는 있지만 그야말로 완벽한 ‘대안’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틀이 여전히 견고하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마련된 자리는 틀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하기 마련이다. 이런 대안적인 장례식의 한계는 법 제도의 개선으로 이겨낼 수밖에 없다. 죽음 이전의 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차별금지법 등의 제정과 죽음 이후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장사법 등의 개정 등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정상가족’의 틀은 여전히 견고하다. ‘대안’들의 또 다른 효과라고 한다면 이런 ‘정상가족’의 견고함을 조금씩 흔들 수 있다는 것일 테고, 다양한 대안들의 등장과 법제도 개선의 노력이 함께 하면 작은 변화들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법 제도가 제대로 마련된, ‘대안’ 장례식이 아닌 그저 다양한 장례식을 통해 누구나 충분한 애도가 가능한 현실이 오기를 빌어본다.
시엘(언니네트워크 상근활동가)
퀴어단체도 페미니즘단체도 아닌 퀴어 페미니즘 단체에서 4년째 활동 중인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배우고 있는 퀴어 페미니스트 활동가입니다. 책방꼴의 책방지기도 겸하고 있습니다.
*2023년 28회 인천인권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재수록하였습니다.
언니네트워크
언니네트워크는 2004년 11월 27일에 그 첫 불을 지핀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입니다. ‘언니’라는 단어는 여성들 사이에서 친근하고 편안하게 불리어지며 또한 자매애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언니네트워크는 ‘언니’와 ‘네트워크’의 합성어로, 여성들의 연대, 지지,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의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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