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민간 정부인 이사벨 페론 정권을 축출하고 호르헤 비델라가 집권한 후 1979년까지 좌익 척결을 명목으로 군사 정부가 벌인 ‘추악한 전쟁’ 당시 실종된 재야 인사와 학생, 정치인, 외국인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9천여 명, 인권 단체의 비공식 집계로는 3만여 명에 달한다.
군부가 자행한 이 ‘추악한 전쟁’에 대해 1983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라울 알폰신 정부는 군정 지도자들을 전원 기소했다. 그는 자신의 공약대로 군정 청산에 착수해 비델라를 비롯한 군정시절 대통령 3명과 당시 각군 수뇌부로 구성된 군사평의회 지도자 9명을 불법 감금과 납치, 고문 등 인권 유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히 비델라 전 대통령에게는 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1985년 12월까지 3년간 진행된 재판에서 비델라 전 대통령과 마세라 전 해군참모총장에게는 무기징역, 비올라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이 선고되는 등 370여 명의 군정 관계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알폰신에 이어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쿠데타 기도가 이어지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자 1990년 12월 ‘추악한 과거를 잊자’며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군정 관계자 전원에게 사면조처를 내림으로써 과거 청산의 기치는 꺾이는 듯했다. 하지만 1998년 6월 9일, 비델라 집권 기간에 5명의 어린이가 납치당했다는 한 어머니의 기소 내용을 연방 법원이 받아들여 비델라를 아동약취 등의 혐의로 체포함으로써 군부 독재의 인권 유린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5월 광장 어머니회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군정 아래 실종된 이들 중 대다수의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고 인권을 유린한 자들이 국민 화합이라는 이름 아래 사면을 받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요 집회가 계속된다는 건 아르헨티나에 아직도 불의가 남아 있음을 뜻한다.”는 말처럼 실업과 빈곤이 날로 가중되는 상황에서 실종자들의 자녀 등 젊은 층의 주도로 사회 보장 운동을 자신의 사업으로 껴안기 시작한 5월 광장 어머니회의 목요 집회는 계속해서 아르헨티나 사회 정의 실현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아르헨티나 민주화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서영/인권운동사랑방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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