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復香港時代革命광복홍콩시대혁명”. 홍콩 민주화운동에서 외치는 구호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에 맞섰던 독립운동을 상기시킨다. 이 구호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유 홍콩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홍콩 땅의 상업지구 개발과 중국 본토에서의 관광객 증가로 인해 홍콩인들이 겪었던 박탈감에서 등장했고, 2019년 송환법 반대투쟁에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저항의 구호로 채택되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 지배에 놓였다가 1997년 중국 반환을 경험한 홍콩인들이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정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독재 체제와 획일화된 국민교육, 관광업을 통한 경제적 종속에 반대하고 민주적 참정권을 요청하지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재 많은 홍콩인들에게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그 정체성을 훼손당하지 않는 것은 매우 절박한 사안이다.
국가폭력과 통제가 강해질수록 ‘홍콩 지역주의’ 또는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가적 탄압은 보다 강화되고 있다. 올해 7월 홍콩보안법 발효 후 ‘광복홍콩’이라는 손피켓을 든 시위군중들이 ‘국가 분열’을 주장한다는 명목으로 체포되기도 한다.
영화 속 홍콩의 젊은 운동가들은 ‘지역주의(로컬리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 사는 땅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것,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위해 연대하면서 지역 사람들의 생계, 자치권, 이익, 공적 자원에 대한 권리를 말하는 것.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들의 주장은 ‘반중’, ‘분열주의’, ‘독립분자’라고 규정되는 순간 불법적인 존재가 된다. 그렇게 그들은 정치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정치적 망명을 떠나게 된다.
‘인권’에 대한 국제규범은 이들의 고난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리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인종차별, 대량학살, 착취와 야만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양차대전이 종식된 후 다시는 이러한 참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 기본적 인권 보장 원칙을 확인한다. 이는 ‘인간이 폭정과 탄압에 맞서 최후의 수단으로써 폭력적 저항에 의존해야 할 지경에까지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유엔 회원국 인민들과 회원국의 법적 관할 하에 있는 영토의 인민들에게 적용된다. 1971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던 미국과 공산권 국가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을 축출하고 유엔에 가입 승인이 되어 중국대표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중국 역시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 1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제 18조부터 21조는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그리고 참정권, 공무담임권, 인민주권의 원칙을 말하며, 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명시한다.
이 선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를 요청하는 홍콩시민들의 투쟁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 행사이나, 홍콩과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폭도’ 규정으로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마스크금지법,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탄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홍콩의 시민들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경찰 폭력, 백색테러와 함께 체제에 비판적인 구성원의 정치적인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적 폭력, 그리고 벌금형을 선고하고 자금을 동결시키는 등의 경제적 압박에 내몰려 있으며, 홍콩에서는 경찰폭력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영화 속 ‘홍콩민족당’이 불법화되는 장면을 보며 나는 2014년 12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헌정사상 최초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사건이 떠올랐다. 이는 조작과 거래로 얼룩진 정치적 탄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권력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관련 인물들의 인권은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 속에서 ‘빨갱이’ 딱지가 사람들을 어떻게 낙인찍고 배제해왔는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가 지금까지도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로부터 ‘적’으로 규정된 이들의 삶은 감시, 통제, 배제 속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제주 4.3사건,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 희생자들과 사회적 트라우마는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말한다. ‘홍콩의 오늘은 세계의 미래다’.
중국정부는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로 전 세계로부터의 연대를 묵살하고 위축시키고자 하며, 중국발 자본은 발언권을 통제한다.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연예인들의 발언은 이들이 놓인 정치적 맥락과 함께, 저항하는 군중에 대한 국가폭력이 질서와 통합이라는 논리로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보여준다. 국제 패권 경쟁의 논리와 국가의 적이라는 규정, ‘질서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배제 속에서 혼란스러운 우리가 꿋꿋이 가야 할 길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인권’이라는 지침일 것이다. 정권 퇴진시위에 나간 시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사망해도 이 살상무기를 완전히 사용금지하지 않고, 도리어 해외에 시위진압 용도로 수출 허가를 내주는 한국에 사는 시민으로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 윤리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 이것은 세계의 미래를 좀 더 낫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로컬리즘은 우리의 삶이 거대한 힘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뿌리 뽑히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로컬의 목소리가 기억되고 계속되도록 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함께 살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현(한홍 민주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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