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 마티스는 미국 콜로라도 주에 사는 6살 소녀다. 코이는 생물학적 남성의 표지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시절부터 스스로 여성으로 정체화하였다. 지금 여권과 주 발급 신분증명서에 코이의 성별은 여성으로 기재되어 있다(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2007년부터 여권 및 기타 공문서상 성별 변경에 대해 성전환수술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지 않으며, 성별전환을 위한 적절한 임상적 치료를 받았음을 입증할 것만을 요구한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코이는 어느 날 학교로부터 더 이상 여자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코이의 부모는 2013년 2월, 콜로라도 주의 차별금지법에 근거하여 학교 당국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렇게도 어린 나이에 학교라는 공간에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2의 증명>은 나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일일까. 특히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남녀는 유별해지고 서로 다른 교복을 입게 된다. 남중고 혹은 여중고를 다닌다고 가정해보라. 나의 다른 젠더표현에 대해 뒤에서 동료들이 수군수군하는 걸 느낀다.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학교는 곧 지옥이다. 학업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교육받을 권리란 유명무실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새 핸드폰을 구매하고 개통할 때, 은행 창구에서 당신의 신원을 확인할 때,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할 때, 나는 끊임없이 거부당한다. 국가에게 내가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공부상 성별변경은 2006년 대법원 결정 이후 가능해졌다. 대법원은 ‘종래에는 성별을 생물학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하여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개인의 해당 성별로의 귀속감,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태도·성격적 특징 등의 성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사회적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며, 호적법 제120조 ‘성별정정’ 절차에 근거하여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변경을 허용하는 예규를 만들었다. 이 예규는 다양한 요건과 서류를 요구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정신과적인 성전환증 진단, 외과적인 성전환 수술, 생식능력의 상실 이 세 가지이다. 하지만 이는 의료계의 임상적 경험칙에 어긋나는 획일적이고 과도한 의료적 개입이며, 개인의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침해 행위다. 요그야카르타 원칙 제3조는 ‘법 앞에서 인정받을 권리’의 내용으로 “성별정체성에 대한 법적 승인의 요건으로서 성전환수술, 불임, 호르몬 치료를 포함한 의료적 시술이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성전환자보건전문가협회(WPATH)는 임상 경험을 통해 많은 성전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그들의 성별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있으며, 성전환과 관련한 수술은 어떤 사람에게는 의료적으로 필요하지만 모든 성전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즉 그 누구도 성별 정체성을 인정받고 신분증을 정정하기 위해 수술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사회 현실, 알려진 과학·의학적 지식과 합의를 법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법 지체(law lag)’다. 대법원 예규의 요건과 별도 입법의 공백을 지금 이대로 두는 것은 한국의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국회, 대법원의 책임 방기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인권 침해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를테면 계약법이 상거래 현실과 합치하지 않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특히 당시 대법원 결정의 취지인 ‘성전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크나큰 장벽으로 작용한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이미 그들에게 인생의 많은 시간은 그렇게 지나버렸다. <2의 증명>은 제도의 장벽과 주변의 시선에 좌절하는 한 개인의 기록이다. 당신이라면 이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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