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변경에서 늘 박해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던 집시족. 이들의 고단한 삶의 역사는 역사의 이면에 가려져 있지만, 소수민족에게 가해져온 가혹한 탄압의 역사를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중남부 유럽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퍼져있는 집시족은 원래 인도 지방에서 살던 유목민들이 생존을 위해 농토와 일거리를 찾아 유랑을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추측된다. 집시족의 역사는 곧 박해와 고난의 역사이다. 기독교적 전통 하에 있던 유럽인들은 이들의 신비주의적 종교관과 문화에 대해 이교도라는 낙인을 찍었고, 강제 추방과 격리 수용과 같은 제도적 박해를 가했다. 더구나 사적 소유의 권리가 절대적 인권으로 간주되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필요로부터 촉발된 집시족의 도둑질과 구걸은 이들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과 혐오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거듭된 강제 추방과 제도적 배제의 경험은 집시족에게 빈곤과 문맹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만들었고, 이들의 유랑 문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50만 명에 달하는 집시족에 대한 나치의 대학살은 이들에 대한 편견과 박해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태인과는 달리 집시족이 겪어야만 했던 조직적 학살은 여전히 역사의 이면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 또한 중심으로 편입되지 못한, 혹은 스스로 중심을 창출하지 못한 한 소수 민족의 비운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구(舊)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는 강제적인 정착 프로그램을 통해 집시족의 이주를 막고 지배 문화로의 편입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격리의 전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동구권 몰락과 함께 급속히 형성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은 이 지역 집시족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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