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디지털 감시에 인권 원칙은 무슨 소용
2015년 4월 8일 세월호참사 추모집회에서 시민 1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경찰은 이 중 40명 이상에 대해 휴대전화를 압수하였다. 그리고 법원은 그날 밤 청구된 압수수색영장을 거의 다 내주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사진, 통화기록은 물론 페이스북 등 원격접속내용까지 깡그리 경찰에 제공해야 했다. 휴대전화 패턴을 풀라고 강요당한 사람도 있었다. 누가 집회를 주도하였느냐고 묻는 경찰 신문에서 진술을 거부하려던 어느 참가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추모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내 인생을 전부 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묵비권이 헌법상 권리라는 선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우리의 삶 거의 모든 면모에 관한 디지털 기록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휴대전화를 국가가 압수하는 것이 “과거에 집을 철저하게 수색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감한 정보를 노출시키며, 그 정보들은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집합되어 있다.”고 우려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기본권을 최소한으로만 침해해야 한다는 그간의 인권 원칙이 디지털 시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나의 모든 이동기록, 사회관계, 취향, 건강, 심지어 생각까지 한데 모으고 드러내고 심지어 추측을 하는 데 이르렀다. 국가는 이런 기술적 권력을 동원하여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쉽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문제의 본질이 기술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국가의 오래된 욕망을 실현시켰을 뿐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는 디지털 시대 국가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동시다발적이고 침입적으로, 표적적으로나 광범위하게 감시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경고한다.
이것은 테러방지법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대전화 만의 문제도 아니다. 집회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연행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코로나19 시기에 확진되었다가 휴대전화와 신용카드의 모든 정보가 제공된 환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애인 부정수급을 수사한다며 관내 거의 모든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6백 명의 정보를 저인망식으로 털어간 경찰의 문제이고, 코로나 시기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사람 1만 명의 휴대전화번호를 수집한 당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전수조사’에 대한 국가의 욕망을 갈수록 완벽하게 실현해 가고 있다. 모든 행동과 생각에 디지털 기록을 남기는 세상으로 빠르게 바뀐 마당에, 침해는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인권 규범이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술이 국가 권력을 뒷받침하는 데 굳이 이와 불화하는 인권 규범은 세상 그 자체와 맞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이 허용하는 최대한까지 국가의 침입을 허용한다면 개인은 늘 최소 침해가 아니라 최대 침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력 앞에 한없이 개인이 투명해지는 상황을 우리가 방치한다면 민주주의조차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관건은 국가 권력을 인권의 원칙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기본권 침해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도 꼭 관철되어야 한다.
장여경(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
정보인권연구소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갈수록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한 디지털 기술의 편의성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민들은 디지털 환경을 일구는 주체가 아니라 개인정보와 지갑을 내주는 대상으로만 취급됩니다. 정보인권연구소는 디지털 환경에서 시민사회 관점에서 정보인권을 지지하는 대안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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