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면서, 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권과 노동권 침해도 더 이상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물론 헬조선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도 퍽퍽하고 고되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제품에 스며든 다른 이들의 피눈물을 마냥 외면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조립하는 제조공장인 팍스콘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과연 우리와 무관할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전락해버리는 노동자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잃어버린 채 절망 속에 투신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 앞에서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영화는 말한다. “2010년 아이폰 한 대당 이윤의 58.5%는 애플사가, 21.9%는 원자재 공급업체가, 4.7%는 한국이 가져가고 나면 팍스콘에 남는 몫은 2%에 불과했다”고. “아이패드 한 대당 애플은 150달러(30%)를 먹고 부품공급으로 한국이 34달러(6.8%)를 가져갈 때, 중국 조립라인 노동자는 겨우 8센트(1.6%)를 월급의 형태로 가져 간다”고. 이 지독히도 모순적인 수익분배구조가 팍스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미래의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절망의 하루하루로 몰아넣고 있다. 기업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부를, 우리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선사하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인권을 보호할 책임은 전통적으로 국가와 정부의 몫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면서, 이 같은 자본에도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국제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제 국제사회는 기업에도 최소한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는 데 합의했다. 자사의 노동자, 작업장 환경, 제품뿐만 아니라 공급망, 지역사회, 환경 등 기업의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부가 인권 보호 책임을 지고, 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을 질 때,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내가 일상에서 누리는 편리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책임은 져야 하지 않을까.
나보다 힘든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래도 낫구나”라고 위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이런 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며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팍스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절망에 몸을 던지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꿔볼 수 있을 것 같다.
강은지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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