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을 얘기해요.
반올림 활동가 : 오랜만에 만나 반가우셔서 농담 주고받으시는데, 어머님, 아버님, 지금 곧 기자회견 시작이에요. 자자, 표정 관리 하셔요~
7년이나 오래 버텨온 힘이 이거였을까. 웃고 농담하고 안부를 묻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서늘한 집회나 기자회견장에서 만나야 하는 우리에게 “밥은 챙겨먹고 다녀요? 대충~ 아이는 몇 학년 이예요? 1학년, 우리 딸 영어 요즘 영어 배운다고 난리네~ 딸 결혼식이 언제라고? 꽃 피고 좋네~” 이런 일상을 나누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민숙언니(박민숙,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7년 근무, 유방암)도 분명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깔깔거리며 즐거워했을 꺼다.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설렘에 누구 못지않게 한껏 멋을 부렸었을 꺼다. 혜경 씨(한혜경, 뇌종양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 6년 근무, 뇌종양)도 예전 사진을 보면 제법 통통하고 발랄했더라. 지금도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고, 웃음이 많고, 신나면 휠체어에서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데… 윤정 씨(이윤정,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6년 근무, 뇌종양)도 몸이 ‘팅팅’ 부어서도 “남들 가본 데, 청계천, 인사동 가자”며 성화였단다.
창호 씨(송창호, 삼성 삼성반도체 온양공장는 6년 근무, 악성림프종)는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진 아빠 모습에 낯설어하던 아들이 가장 슬펐다고 한다. 희수 씨는 “고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민숙 씨는 동료 소식을 ”누가 무슨 병이래, 죽었대” 라고 전해 듣고. 삼성으로부터 사과, 보상, 재방방지대책 마련을 약속 받는 것 말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상성의 복원이 아닐지. <탐욕의 제국> 홍리경 감독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이들의 꿈이 먼지처럼 사라진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반올림과 반올림을 응원하는 이들이 해야 할 것은, 클린룸에 들어선 뒤 달라진 그들의 삶, 사라진 일상을 복원해가는 일이 아닐까. 사라져간 안타까운 생명과 건강 그리고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을 챙기면서도 남은 자들의 일상과 행복도 하나씩 나누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소중한 일상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세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권영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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