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캄보디아의 봄

인권해설

2013년 5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초청으로 보응칵 호수 마을 대표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캄보디아의 인권침해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마을 대표였던 보브 소피는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 등과 함께 북아현동 철거현장과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현장을 방문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포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발전되고 현대화된 도시에서 참혹한 철거과정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우리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21세기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누가 국가에 이런 잔인하고 몰염치한 권한을 줬는지 말이다.

삶의 공간이란 내가 살고 있는 건물이고 골목이고 마을이다. 단골가게의 단골 고양이가 오늘은 언제 나타날지 궁금해 기웃거리고 동네 하나밖에 없는 버드나무가 내년에도 살아있기를 바라며 길을 걷는다. 누군가는 밭을 일구고 누군가는 배를 타고 또 누군가는 장사를 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렇게 공간은 함께 어우러지고 쌓아온 시간으로 차곡차곡 채워진다. 어떤 계산으로도 대체될 수 없으며 어떤 명분과 법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존엄한 가치들이다.

공공사업을 한다며 터무니없는 보상금으로 토지를 강제수용하거나, 개발이란 이유로 집을 부수고 강제로 쫓아내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권한과 이권을 민간 사업자에게 넘기는 일 따위도 마찬가지다. 현재 모든 보상이나 협의, 강제퇴거의 실질적 권한은 조합이나 시공사에 있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사람이 다치고 살려달라고 호소해도 조합이나 용역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관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서울시, 구청, 경찰, 119, 국가인권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건 공공기관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무능이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공공연한 방치와 묵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장위7구역 재개발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조합이 수차례 불법집행을 시도하고 동절기 강제철거 금지 원칙을 위반했지만 단 한 번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법원 집행관은 집행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집행 완료를 선언하고 사라졌고, 나머지 철거와 집행은 조합이 고용한 미배치 청소용역들이 대신했다. 옥상과 철탑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들에게는 단전·단수는 물론 음식반입도 차단했으며 이에 대한 협의는 전적으로 조합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다. 용역을 피해 며칠을 철탑꼭대기에 매달려있거나 밤새 비를 맞고 쓰러지기 직전에도 공권력은 그 어떤 위로나 보호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이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재개발의 현주소다.

재개발에서 원주민의 정착비율은 실제 10% 안팎이다. 이는 재개발의 목적과 방향이 원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있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내쫓아 땅값과 건물가격을 올리는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집은 삶의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오직 평당 분양가로만 존재한다. 이렇게 조합과 시공사가 개발사업을 독점하고 돈을 버는 구조를 없애지 않는 한 폭력적인 강제퇴거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국에 빈 아파트가 넘쳐나도 매일같이 집이 허물어지고 그 위로 아파트가 올라간다. 아무리 많은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세워져도 집 없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만 간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며 살고 싶은 곳에 살 권리가 있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삶의 일상과 추억이 묻어있는 공간이다. 그곳엔 길과 가게가 있고 마을이 있고 나와 연결된 모든 관계들이 살아 숨 쉰다. 누구도 이걸 돈이나 법 따위로 뽑아내거나 대신할 수 없으며 어떤 이유로도 강제로 빼앗아갈 수 없다.

2018년. 캄보디아와 한국의 봄은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 호수를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에게 호수를 빼앗고 모래를 메워 그 위에 세우려는 게 무엇인지, 사람을 망루와 죽음으로 내몰고 죄를 뒤집어씌운 그 파렴치 위로 어떤 반짝거리는 것들이 만들어지는지 지켜볼 것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우리는 이 케케묵고 순진한 질문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김은석 (창작집단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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