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미검출은 환영과 포용의 기준이 아니다
덱스는 영화 초반에 의사를 통해 본인의 HIV 미검출 상태를 확인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검출은 혈액 내 HIV의 양이 기준치보다 낮은 상태를 말하는데 국가별로 차이는 있으나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200개/ml 미만, 한국의 경우 20개/ml 미만이다. 일반적으로 HIV 감염인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지속한다면 최대 6개월 이내에 HIV 미검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HIV 미검출인 HIV 감염인은 비감염인과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더라도 전파확률이 0%이다. 이러한 상태를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라고 한다. U=U 캠페인는 2007년부터 2016년 사이에 수천 쌍의 커플(HIV 감염인과 비감염인 커플)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들에 기반하며, 100개 이상의 국가와 1000개 이상의 조직이 U=U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WHO와 UNAIDS 등 국제기구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한국의 질병청 또한 U=U를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미검출과 U=U는 HIV 비범죄화와 연결된다. 현재 여러 국가에 아직 HIV범죄화 법규범이 남아있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미검출 상태를 방어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국에는 HIV 감염인을 범죄화하고 있는 에이즈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죄가 있다. 전파매개행위죄는 2023년 10월 26일 헌법재판소 선고에서 합헌4, 일부위헌5로 심판족정수를 채우지 못해 합헌결정이 났으나 양측 모두 U=U를 인정했다. 그러나 만약 미검출인 상태가 범죄화 법규범에 방어수단이 된다고 하더라도 미검출에 도달할 수 없는, 미검출에 도달하기 어려운 HIV 감염인을 여전히 범죄화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비범죄화라고 할 수 없다. HIV/AIDS에 대한 새로운 낙인을 재생산할 뿐이다. 그렇기에 U=U가 비범죄화의 근거 중 하나로 작용할 수는 있어도 U=U가 비범죄화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선 안된다. HIV 예방과 HIV 감염인의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서도 완전한 비범죄화가 되어야 한다.
HIV 예방의 핵심은 HIV 감염 여부를 모르는 사람이 조기검진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HIV 감염인을 인지한 사람이 조기치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의약품접근권과 의료접근권을 보장해야 하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혐오와 차별, 낙인을 철폐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HIV/AIDS에 대한 낙인과 차별, 혐오가 사회에 만연해 있고, 국가는 HIV를 범죄화하는 법을 통해 조기검진, 조기치료를 방해하고 있다. 초국적 제약회사는 독점적인 특허권 유지와 높은 치료제 가격으로 폭리를 취함과 동시에 퀴어와 HIV 감염인의 의약품접근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HIV 감염인에게만 미검출 도달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미검출 상태에 도달한 HIV 감염인 덱스를 커뮤니티가 포용하는 것처럼 그려낸 듯한 마지막 장면은 앞선 이유로 인해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마치 덱스가 2년 동안 커뮤니티와의 단절을 선택하고, 다시 커뮤니티에 돌아가기 위해 “미검출”이란 티켓을 얻은 걸 축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덱스가 HIV 감염인이라는 것을 밝혔다면 커뮤니티가 포용할 수 있었을까? 미검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2년 전의 덱스를 환영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커뮤니티를 꿈꾸고 만들어야 한다.
소리 (HIV/AIDS인권행동 알)
HIV/AIDS인권행동 알
HIV/AIDS 감염인의 인권증진과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2011년 12월 1일에 설립되었습니다. HIV감염인 노동권 침해 대응, 진료거부 및 의료차별 대응,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운동 등 HIV/AIDS 인권증진을 위한 행동을 합니다. ‘HIV/AIDS정보사이트 아카히브’를 제작, 유지하고 있고 청소년 청년 HIV 감염인이 차별없이 안전하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매해 인권캠프를 개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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