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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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의 패전이 임박해서 일체의 지원이 끊긴 뉴기니아 전선 일본 잔류병들은 견디기 어려운 처참한 상황에 빠졌다. 굶주림과 말라리아, 동료들의 죽음은 잔류병들을 극심한 공포속으로 내몰았다. 태평양 전쟁 중의 뉴기니아 전선과 버마 전선이 병사에게 베트남 전쟁보다 더 가혹했다는 사실은 일본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백인을 ‘흰 돼지’, 흑인을 ‘검은 돼지’라고 부르면서 먹던 일본병들이 아군 병사마저도 먹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오쿠자키 켄조 (奧崎謙三)는 제2차 대전 중 독립 공병대 36연대의 병사로서 격전지 동 뉴기니아로 파병된다. 이 부대는 패주를 거듭하면서 지리멸렬이 되어, 결국 살아 남은 것은 1천명 중 36명에 지나지 않았다.

오쿠자키의 경력은 화려(?)하다. 부동산업자를 ‘과실치사’ 시켜 10년이라는 세월을 독방에서 보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진정한 표적은 천황임을 깨달았다. 출옥 후인 1969년 1월, 오쿠자키는 신년 하례 행사로서 황거(皇居-천황의 거처) 밸코니에 서서 국민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천황을 향해 “야마자키! 천황을 쏴라!”며 전사한 전우의 이름을 부르면서 새총으로 4개의 빠

찡코 알을 날렸다. 다시 독방행. 이 사건은 일본 패전 후 처음으로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한 직접 행동으로서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후 이른바 ‘황실 포르노 삐라’를 뿌리고 다시 독방으로 갔으며, 출옥 후에는 전 수상 다나까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 영화는 그 무렵부터 약 5년에 걸쳐 촬영·편집된 것이다.

1983년에 오쿠자키는 과거 뉴기니아에서의 중대장 아들을 권총으로 쏘아 13년형을 받게되는데, 이 때 그의 표적에는 자민당 다나까 파 국회의원이나 남경 대학살 관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서준식/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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