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최악의 인종 대학살’로 불리는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내전이 시작된 것은 1992년 4월 26일이다. 이 날은 보스니아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이기도 하다. 세르비아계는 회교도가 주도하는 보스니아가 총선을 거쳐 독립을 선언하자 신유고연방과 손을 잡고 수도인 사라예보를 공격한다. 신유고연방은 즉시 군대를 철수했지만,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반군은 민병대를 조직해 내전을 벌여 전체 영토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3년 7개월간의 전쟁기간 동안 발생한 사상자는 20여망 명, 난민이 270여만 명에 이른다.
유엔과 서방국가들은 유교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네 차례에 걸쳐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번번이 세르비아계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세르비아 공화국에 대한 각종 금수조치를 단행했고, 세르비아계는 국제적인 고립과 피폐한 경제, 그리고 세르비아 공화국마저 등을 돌리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된다.
결국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유고 내전은 1995년 11월 내전 당사자인 회교·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가 영토를 51 : 49로 분할해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자유민주선거를 통해 이를 하나로 묶어 느슨한 연방국가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데이턴 평화협정의 체결로 전기를 맞게 되었고, 1995년 12월 14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보스니아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끝났다.
그러나 1998년 2월, 신유고연방에서 독립하려는 알바니아계와 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계의 충돌로 발생한 코소보 사태는 세계의 화약고라는 발칸반도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준다.
<최서영 /인권운동사랑방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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