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어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와 충격의 파장이 크다. 우리는 가해자의 끔찍한 범죄 행위에 공분하고 동시에, ‘무서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며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대중의 분노와 불안 속에서 정부와 국회는 성급히 성폭력관련 정책들을 우후죽순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높은 성폭력에 대한 관심은 언론에 보도되는 극악무도한 ‘괴물’ 몇몇에게만 집중되어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만 힘을 쏟을 뿐, 정작 성폭력을 근절하고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거나,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지원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은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와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가면놀이>와 <잔인한 나의, 홈>에서 성폭력피해자와 가족들이 호소하는 것처럼 성폭력이 발생하면 성폭력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나 옷차림 등을 문제 삼으며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믿어주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피해자의 부모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을 숨겨야하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은 성폭력 피해자의 입을 막고, 이는 결국 성폭력 범죄에 대한 낮은 신고율로 이어지고 있다. 성폭력은 가해자 개개인의 잘못 때문에만 발생한다기보다는 성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다. 때문에 성폭력을 근절하고 피해자가 성폭력 경험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노력 뿐 아니라 피해자의 주변인들, 나아가 전사회적인 성찰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성폭력이 타인의 신체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죄임을 알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져야하며, 사회 구성원들은 성폭력 피해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 친구, 이웃으로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된 상을 버리고 피해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응원해야 한다. 그래야 성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도 가능할 것이다. 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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