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의붓아버지로부터 12여 년 동안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고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친족성폭력’을 명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 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람인 경우는 81%이고, 이 중 친족을 포함한 친인척으로부터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13.9%에 달한다. 그리고 같은 해 대검찰청이 발표한 ‘친족성폭력 사범 접수 및 처리 현황’에 의하면 2003년 184건이었던 친족성폭력 피해 신고 건수는 2013년 502건으로 10년 동안 2.6배 증가했다. 피해를 경험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암수(暗數)율이 높은 성폭력 피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실제 친족성폭력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친족성폭력은 개인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족’이 폭력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해자는 끊임없이 ‘우리둘만의 비밀이다’, ‘너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 사실을 다른 가족이 알면 무척 힘들어할 것이다’라며 피해자 개인에게 피해의 책임을 감당하도록 강요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메시지는 피해자에게 가족이 해체되거나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다른 비가해 가족이 겪게 될 심리적 충격을 확신하게 만들고, 피해 사실은 더욱 은폐된다. 성폭력을 낯선 사람으로부터 겪는 ‘특별한 경험’으로 호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더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친족성폭력 피해는 친족성폭력의 실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성폭력피해 생존자의 ‘말하기’는 우리 사회가 듣지 않으려 하는 성폭력 피해를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으면서 우리 눈에 보이도록 한다. 동시에 성폭력 피해 경험이 씻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고 그렇기에 피해자는 위축되어 있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고, 피해를 재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survivor)로 재위치한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경험을 묻어두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꺼내어 들여다보는 과정은 ‘기억’함으로써 성폭력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거대한 침묵’에 맞서도록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것은 그래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란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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