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잔인한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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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봄,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동아시아의 갈등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역사’임을 되새겨 준다. ‘대동아공영권’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일본 보수 우익의 ‘오래된 염원’은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만주국의 주역이며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 신조 수상에게 할아버지의 역사를 복권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역사인식은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던 그 시대로부터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흔히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로 여기지만, 오늘도 일제 침략이 남긴 상처와 싸워야 하는 시대의 증인들이 여기 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핵폭탄의 피해를 입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희귀병을 천형처럼 안고 태어났다. 그녀의 다섯 오누이들도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의 세월을 살고 있다. 1945년 8월 6일의 히로시마에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로부터의 ‘잔인한 내림(遺傳).’ 그러나 그 고통은 그녀에게서 끝나지 않고, 잔인하게도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얼마 전에 태어난 손주를 안고 즐겁게 웃으면서도 그녀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가슴 한 켠 불안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까. “50년이 넘도록 살면서 흘린 눈물만 해도 말라도 다 말랐지 싶다.”던 그녀는 자신과 같이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당당한 활동가로 거듭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비키니,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피폭자들과 연대의 손을 잡은 그녀. 식민지 지배로 비롯된 자신들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고, 두 번 다시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탈핵과 평화로 나아갈 것을 호소하는 그녀의 외침에 나는 그리고 한국 사회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기회로 일본을 앞질러 핵발전소를 수출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천박한 인식에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야스쿠니의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 굳게 믿는 그대 곁에는 오늘도 식민지 지배의 상처를 현실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방이 되고 67년이 지나도록 원폭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률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대한민국은 오늘도 기만적인 원전신화를 만들어 내며 야만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후쿠시마 그리고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녀의 절절한 호소에 이제는 당신이 응답할 차례이다. 김영환 (평화박물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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