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자매에게 정의를

인권해설

2013년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국제여성폭력근절의 날’, 이 날 행사에 참가한 여성들은 ‘696’이라는 숫자를 쓴 촛불들 앞에서 함께 하늘을 향해 풍등을 날렸다. 이 숫자 ‘696’은 2013년 과테말라에서 살해된 여성들의 숫자이다. 과테말라는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여성 살해 수치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4,159 명의 여성들이 살해되었고, 2008년에서 2011년 사이에는 2,900명의 여성들이 살해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도 살해된 여성들이 600명에 달했다. 물론 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 살해, 미수, 폭력 사건들은 훨씬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끔찍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2009년 4월에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수 년 간의 노력 끝에 ‘여성살해 범죄에 대한 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통계에서 드러나듯이 여전히 수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성살해’(Femicide)라는 용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여성혐오로 인해 발생하는 살해의 맥락들을 드러내기 위한 용어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거나 남자 같은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이유로, 또는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가족, (전)남편, (전)애인, 혹은 무작위의 남성들로부터 심각한 구타와 신체 훼손, 염산테러, 강간에 시달리다 죽어가고 있다. 이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살해의 유형은 ‘가정폭력’과 남편/애인, 전 남편/전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다. 특히 중남미의 경우 여성살해 범죄들이 더욱 조직화되고, 대규모로 벌어지며, 정부와 공권력은 이를 제대로 조사하거나 처벌하지도 않아 중남미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femicide’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feminicidio’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과테말라는 36년에 걸친 오랜 내전 동안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강간해 온 역사가 있는데다가, 1980년대부터 강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양극화와 실업문제가 심화되면서 가부장적 폭력이 더욱 심각해졌다. 대체로 집안과 마을에 머물며 가사노동이나 가내수공업을 하던 여성들이 직접 일자리를 찾아 멀리까지 나가서 자신의 일을 하고 일터와 공적 영역에서 힘을 확보해 나가자, 이러한 여성들에 대한 일종의 가부장적 처벌로서의 혐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보고에 의하면 11살 이하의 여자아이들을 엄마와 함께 살해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처한 빈곤과 열악한 사회적 환경은 이런 상황들을 더욱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2009년 관련법이 제정되었어도 좀처럼 살해 수치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 태도를 가지고 가해자들을 제대로 조사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경찰 당국과 사법부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여성들이 처해 있는 심각한 사회적 조건과 환경들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레베카의 싸움은 단지 동생 아델을 위한 싸움만이 아닌, 이 거대한 가부장적 공모의 세계에 맞서는, 과테말라의 모든 여성들과 함께하는 싸움인 것이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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