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우리의 지구 위에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꿰어낼 수 있어.”
<잇다, 팔레스타인>에 나오는 인터뷰이는 1948년 ‘대재앙’을 직접 겪은 사람부터, 팔레스타인을 조/부모 세대에게 얘기로 전해 듣기만 한 사람, 군사 점령지에 나고 자라 살아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팔레스타인 각 지역을 담은 거대한” 자수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은, 자수를 통해 점령지와 국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잇는다.
그런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이들보다 밖에서 사는 이들이 더 많을까?
우리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 세 곳을 묶은 것으로,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22%에 불과하다. 78%의 지역은 70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차지했다. 당시 유럽에서 이주해 들어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국가’를 만들겠다던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끝내고 철수한 틈을 타 이스라엘 건국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한 일 년간 주변의 신생 아랍 국가들과 전쟁하며 팔레스타인 원주민 마을 530개를 파괴하고 원주민 15,000명을 학살했으며, 인구 절반이 넘는 80만 명을 강제추방해 난민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때를 나크바, 즉 대재앙의 날들로 기억한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위임통치기에 실행했던 ‘비상강제령’을 이스라엘 법제로 편입하고 군사정부를 만들어, 78%의 땅에서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을 18년간 통치했다(같은 기간 유대인들은 민간정부가 통치했음은 물론이다). 비상강제령은 상소할 권리를 주지 않은 채 민간인을 관할하는 군사법원, 신문과 서적 발행 금지, 가옥 등 건조물 파괴, 재판 없는 무기한 행정구금, 출입봉쇄, 통행금지, 강제 이주 및 추방 등을 규정했다. 자국 내 군정을 폐지한 이듬해인 1967년에 이스라엘은 나머지 22%의 팔레스타인을 점령했고, 비상강제령을 적용하며 지금껏 군사점령 통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78%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즉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당한 난민과 후손은 무려 70년 동안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이스라엘에 철저히 금지당했다.
이처럼 군사 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이란 구분은 팔레스타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건국, 온갖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을 무력화시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들은 강제로 격리된 것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이스라엘의 왕래 허용과 여러 식민제국을 본받은 분열통치 전략의 일정한 성공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회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저항을 통해 서로에게 연결돼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고 전통을 지켜내는 것,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새로운 세대에게 지워진 과거가 되지 않게 하는 것. 존재 자체가 저항이라고 얘기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수는 그 존재와 저항의 한 방식이다.
영화에는 가자지구의 인터뷰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만 매우 제한적으로 열고 있으며 이마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자지구로의 출입과 촬영이 여의치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가 이집트에서 상영됐을 때 가자지구 출신의 한 관객은 이스라엘이 허가를 내주지 않기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서안지구를 영화를 통해 방문했다며, 언젠가 전 세계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모여 함께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 저항하는 한 그녀의 말은 현실이 될 것이다.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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