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일하는 여자들

인권해설

지난 11월 12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상암동에서 여러 단체와 함께 전태일 50주기 방송노동자 작은 문화제 <무늬만 프리랜서 이제 그만,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를 진행했다. 스물두 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방송현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방송사 제작사들은 노동자들에게 프리랜서 계약, 용역 계약을 강요하며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의 불안정성은 ‘프리랜서’라는 말의 자유로움으로 미화되고 왜곡된다. 일부 유명인의 ‘프리랜서 선언’과 함께 고액 출연료가 기사화되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프리랜서’들은 적은 수입과, 불안정한 고용관계에서 오는 해고에 대한 불안을 겪고, 비대칭적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초장시간 노동, 저임금, 무계약, 구두계약, 일방적인 해고 통보, 임금체불, 성폭력‧성희롱, 폭언 욕설 고성이 난무하는 현장 분위기….

위계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방송 현장에서 대다수가 여성인 방송작가들은 더욱더 차별적인 환경에 놓이며, 인맥으로 연결된 환경에 있어서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현장에서의 일상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출산 휴가‧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며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해고되어도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나 장치가 없다.

방송작가유니온 2018년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방송작가들은 일상적으로 임신 출산과 관련된 폭언을 들으며 일하고 있다. “애 생기면 못 하겠네, 그럼 다른 사람 구해야지” “임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든가, 혹시 불임이면 합격이다”…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말들이 난무하지만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한마디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방송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최근 방송현장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방송현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부당한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며 행동하고 있다. 2017년 11월 출범한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작가들의 일상 속 벗이 되고,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며, 용기 내 목소리 내는 이들과 함께 싸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전태일 50주기 작은 문화제에서 영화<일하는 여자들>의 감독인 방송작가유니온 김한별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MBC는 내일 전태일 열사 50주기 관련 방송을 틀림없이 내보낼 겁니다. 하지만 MBC가 전태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노동’ 관련 취재를 하고 방송을 내보낼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최근 MBC 보도국 뉴스투데이에서 수년간 일했던 방송작가들이 부당해고 되었고, 방송작가유니온은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방송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 냈던 방송사들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에 목소리 내는 시사교양국 피디 기자들이, 정작 방송사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를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지만, 조금씩 균열을 내며 저항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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