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인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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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건설의 역군’으로,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불려왔던 노동자들이 ‘고려장’을 당했다. 98년 6월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 아래 퇴출기업으로 선정된 현대중기산업(현대 계열사)의 노동자들. 그들은 고용보장에 대한 아무런 약속도 받지 못한 채 무작정 거리로 내몰렸다. 퇴출된 2백여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40대 후반, 대부분 60-70년대 현대에 입사해 중동의 건설현장을 누볐던 노동자들이다. 이 가운데엔 해외 건설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다 퇴출소식을 접한 노동자도 있었다.

젊음을 바친 일터에서 한순간에 쫓겨난 ‘늙은 노동자’들은 결국 조계사에서부터 현대 본사 앞, 영등포 산업선교회로 옮겨가며 무려 450여 일에 걸친 농성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모회사인 현대건설로의 고용승계!”. 그러나 회사측에선 ‘정부의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발뺌으로 일관했고, 노동자들은 고난의 행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19일 간 천막도 없이 길바닥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기도 했고,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을 기습점거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건강이 악화된 동료가 속출했으며, 99년 1월 27일엔 조합원 육경원 씨가 유명을 달리하는 슬픔마저 겪었다. 97년 이미 위암판정을 받은 바 있던 육경원 씨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농성에 참여했다가 위암이 재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노동운동사에 기록될 장구한 투쟁을 전개했음에도, 노동자들은 결국 ‘패배’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의 막무가내식 버티기에 밀린 노동자들은 마침내 99년 10월 12일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농성해단식을 가졌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를 간직한 채 떠났다. 각자의 일자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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