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해설

노르웨이. 이름 그대로 한참 북쪽의 나라, 복지국가 선진국에 국민들도 관대하고 도시든 시골이든 깨끗해 보이는 나라다. 평소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니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느끼고 친환경 실천에도 열심히 나설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도 두통이 있다. 기후 위기와 화석에너지라는 두통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안정성의 상당 부분은 세계에서 손꼽는 석유와 가스 수출국인 덕분이다. 그런데 이 나라 북극 바렌츠해의 석유 시추가 심각한 반대를 만났다. 석유 개발권 면허를 내준 정부를 상대로 ‘기후 소송’이 벌어진 것이다. 법조인들뿐 아니라 청년 기후활동가, 은퇴한 전문가, 시민들이 이 시추 허용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노르웨이 헌법 제112조는 “모든 사람은 건강에 이로운 환경과 생산성, 다양성이 유지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태어나지 않은 모든 노르웨이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채굴 사업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송이다.

하지만 재판은 원고에게 쉽지 않게 흘러간다. 석유 시추가 노르웨이의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거니와, 피고 즉 정부 측의 논리는 시종일관 절차적인 부당성은 없다는 것이다. 석유 시추를 더 할 것인지 또는 기후 위기를 감내할 것인지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지 그것을 법원이 답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정치적 영역의 답을 할 수 없는 법관들의 대답은 ‘기각’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법원 바깥의 장면들까지 보아야 한다. 기후학자들과 주민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가는 노르웨이의 빙하를 기록하고 증언한다. 그러나 석유 채굴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 나라의 많은 지자체와 노동자들은 기후뿐 아니라 생존도 현실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윤리적 당위론만으로는 이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얼마 전 독일에서 벌어진 유사한 기후소송은 기후 보호법이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며 원고가 승소했고 의회는 기후 목표를 상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몇 건의 기후소송이 시작됐다. 이기기 쉽지 않은 법률 투쟁이지만, 그 과정과 결과 모두가 기후 위기와 인권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바꾸는 의미가 있으니 최선을 다할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노르웨이 정부 측의 말처럼, 애초 법으로 해결이 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대체 어떤 법과 제도가 기후 피해와 기후 회복을 온전히 보장해 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노르웨이의 ‘두통’이라는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두통은 문득문득 찾아오고 쉬이 걷히지 않으며 하나의 처방으로 낫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소송과 싸움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두통으로, 그러나 대화와 행동을 만들어내는 두통으로 함께 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우(기후위기 비상행동, 탈성장 대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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