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출신 정치가로서 1946년에 대통령선고에 당선된 독재자 후안 도민고 페론(1895-1974)은 반공의 바탕 위에 초등교육 확장 등 개혁 정책을 단행하면서 민족주의적 경제 체제를 세웠다. 결국 그런 정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외관상의 개혁적·민족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아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페론주의’라는 아르헨티나에 특유의 사상·정치 운동이 발전되었다. 이 세력은 1955년 군부 쿠데타로 페론이 실각·망명한 뒤에도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무시 못할 세력으로 남아 군사 정권과 각축을 벌였다.
1970년대 들어 정치적 폭력과 민중들의 항쟁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가운데 페론주의자와 급진파의 연합은 군사 정권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망명중이던 페론의 귀국을 추진, 1973년에 정권을 잡기에 이른다(1974년에 페론 사망). 그러나 혁명과 반혁명 양세력의 폭력적 갈등은 고조되고 경제가 악화되면서 이 민간 정부는 위기를 맞게 되어, 결국 1976년의 군사 쿠데타를 초래하게 된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계속되는 군부 통치 기간, 아르헨티나는 암흑의 시기였다. 좌익 게릴라 소탕을 구실로 군사 정권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테러 (‘더러운 전쟁 (dirty war)’)를 감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암매장되었으며,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1만 명, 그러나 비공식 집계에 의한 사망 및 ‘실종’자수는 3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1983년, 대통령이 된 급진시민동맹 (UCR)의 알폰신은 과거 청산 작업에 착수했다. 연방 고등 법원은 군정 초기 대통령인 비델라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등 일부 군인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으나 군부 세력의 강한 저항을 받아, 많은 군인들의 인권 범죄를 불문에 붙이는 방향으로 돌아서 버렸다. 그나마 처벌받아야 할 나머지는 89년에 정권을 잡은 페론주의자 메넴에 의하여 모두 사면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문민 시대’는 아직도 진정한 민주화와는 먼 거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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