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언더그라운드

인권해설

특성화고 학생에게 일터는 아주 가까운 미래다. 그들이 취업을 위해 돌아보는 공장에는 위험한 노동을 곡예처럼 해내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으로 손가락을 잃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 사이로 이주노동자의 모습이 무심히 스쳐진다. 학교엔 취업 현황이 나열되고, 그들이 취업하게 될 곳은 대부분 산업단지의 중소기업이다. 정교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업을 했지만, 결국 ‘버튼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돌아보는 일터 중 부산교통공사는 괜찮아 보이는 일자리에 속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계급이 존재했다. 경정비, 청소, 선로 유지보수, 운전, 제어실 업무 등 전동차를 운행하기 위한 수많은 노동이 존재하고, 이는 모두 전동차의 안전한 운행이라는 목표로 합쳐지는 노동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새기는 ‘일의 의미’보다 정규직,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형태다. 비정규직이란 이름표가 일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고용형태의 위계는 이제 사회적인 신분이 되어 노동자의 존재 자체에 값을 매긴다. 그렇게 노동에 값을 매기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권리 회복의 과정은 불합리하고 공정을 해치는 것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 사이로 지금은 무인화되어 볼 수 없는 매표노동자의 목소리가 흐른다.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일터는 업무를 분리해 외주화하고, 외주화한 노동을 기계화하면서 사람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에 그치지 않고 정규직이 종사하는 이른바 핵심업무라는 기관사 업무도 무인화로 인해 점차 지워져 가고 있다. 그 속에서 정작 지워지는 것은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모두의 안전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진짜 뭘까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더 이상 정교한노동과 기술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필요 없어진 것일까? 어두운 터널 속에서 퉁퉁 선로를 두드려 점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가려져도 되는 것일까? 안전의 보장이 기계화로 대체될 수 없음에도 그렇게 사라지는 노동을 역사의 산물처럼만 여겨도, 정말 우리 사회는 괜찮은 걸까?
그 모든 노동에 대해 찬미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에대해 이 사회가 얼마나 존중을 표하고 있는가에 있어서, 말로 하는 찬사가 아닌 안전이나 노동조건의 보장, 그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결사의 자유 보장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존중은 ‘권리’로 구성되어야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이 위험한 일터에 비정규직으로 진입하는 것에 대해,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려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기술의 발달이라는 명목으로 위험을 방치하고 노동자를 일터에서 몰아내는 것에 대해,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 하는 존중과 현실의 간극은 바로 그 ‘권리’의 공백만큼 발생한다.

* 이 글은 24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작 <언더그라운드>의 인권해설과 같습니다.
엄진령(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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