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종북 프레임이 통치전략이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사건은 ‘전통적 의미의 마녀사냥’에 가장 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 12. 15.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 바로알기 행사는 좋지만,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가 우리 헌법 질서를 벗어난 종북 행사였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종북콘서트’라는 TV조선의 허위보도에 힘을 실어 주었던 것이다. 이후 신은미, 황선 두 사람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12월 10일에 발생한 사제폭탄테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암묵적인 방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사태를 돌파하기 위해서 통일토크콘서트 사건을 키웠다. ‘참 나쁜 대통령’이었다.
극우세력은 사제폭탄테러마저 옹호했다. 보수언론과 청와대도 방조 내지 동조했다. 어버이연합 등 극우세력은 현대판 서북청년단과 같았다. 정권의 비호하에 ‘폭력면허’를 가진 양 행세했다. 신은미, 황선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물리적 위협을 가했다. 그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들이 다수이고 주류라는 자신감이었다. ‘빨갱이에게는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섬뜩한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종북으로 낙인찍힌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물리적·비물리적 폭력을 ‘애국’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들이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참석하는 맥락과 상통한다.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다.
전국공무원노조, 전교조, 심지어 밀양송전탑 할머니들에게까지 ‘종북’ 딱지가 붙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박근혜에게 가장 절대적인 지지를 몰아준 경북 성주 주민들마저 종북 사냥감이 되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세력은 종북으로 취급되었다.
최근에는 ‘종북몰이’ 보다는 ‘종북팔이’가 더 유행했다. TV조선을 필두로 하는 종편은 보수 논객과 탈북자를 북한 전문가라며 치켜세운 뒤, 북한을 ‘찌질하고 가난하고 짜증 나게 하는 나라’로 묘사하게 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자극적·선정적 보도로 시청률 확보에 열을 올렸다.
종북 공세는 지배 권력이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세력을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찍음으로써 대중과 진보 운동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전략이었다. 종북 프레임이 지배전략으로 유효했던 이유는 냉전 구조에서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언론권력, 정권에 충성하는 검찰권력, 권력에 기생하는 극우단체가 합세하여 상호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민주·진보세력의 ‘방관’이었다. 인권을 앞세우는 사람들과 단체들마저 종북몰이를 외면하고 방관했다. 신은미, 황선을 옹호하면 함께 매장당할까 봐 두려워서 모른척했다. 심지어 일부는 보수언론의 허위보도에 편승하여 비난대열에 가세하였다. 그들 역시 레드콤플렉스의 틀에 갇혀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종북 프레임은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활개를 칠 수 있었다. 가장 뼈아픈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 개념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천부적 권리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출발하였지만, 근본적·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개인의 인권 실현도 불가능하다. 종북 프레임의 근원에는 분단구조가 있다. 분단에 기생하는 기득권은 끊임없이 전쟁의 공포를 부추긴다. 분단구조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인권확장을 위한 위대하고 필수불가결한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영역의 운동은 모두 인권 확대를 위해 긴요하다. 따라서 다른 영역의 운동을 존중해야 하고, 분열하지 않고 연대해야 한다.
신은미와 황선의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 자들도 표현의 자유를 외친다. 신은미, 황선의 입을 틀어막고 추방과 구속에 이르게 한 극우 언론과 수구단체들도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외견상 인권의 충돌이다. 인권은 결코 가치중립적인 개념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의 인권을 우선에 두고 지켜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더 가치 있는 인권을 선별해낼 것인가?
김종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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