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애국시민 사관학교

인권해설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 일부터 다음 각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

대한민국 현 병역법에 따르면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에 근거해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역을 이행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아, 매년 300명에서 500명의 청년은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년 6월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징집대상에서 제외된다. 다시 말해, 이들은 2등 국민이 되면서 병역의무를 상실한다.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고서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영화는 교련과목으로 주니어 ROTC 프로그램을 선택한 또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4세에서 17세 청소년들을 조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 훈련생들에게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고 이와 동시에 자기 계발 역량을 향상할 수 있는 것으로,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미국 국방성 펜타콘과 지방정부, 학교는 서로 연결되어 이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력한다. 주니어 ROTC 프로그램은 애국심이 풍성한 일등 시민이 되고, 군복을 입는 것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입대하는 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길임을 알리는 모습이 마치 대한민국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애국시민’이 되기 위해 ‘일등시민’이 국가에 봉사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전쟁터에 나가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국방부가 교육의 공간을 장악해 청소년들에게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주입하는 미국은, 결국 국가안보 강화를 위해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선택받은 국민을 가려내고 그렇지 못한 국민을 배제한다. 한국은 병역을 거부하는 청년을 감옥에 가두고 전과자로 낙인을 찍으며 사회에서 배제한다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배제당한 사람들에게 군대가 유일한 탈출구임을 피력한다. 소위 ‘정상적이고 남성적인’인 국가안보가 당연시되고 이에 저항하는 개인들과 반군사주의 문화를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주체로 규정한다. 적대감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이런 움직임은 더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한국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군사안보가 강화되고 있으며, 무기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또한, 국가와 결탁해 배를 불리는 군수산업체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그 규모는 점점 더 비대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혐오와 적대감을 먹고 자라는 이런 군사문화는 개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소수자를 색출하고 배제하며 차별하는데 그 기반을 형성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며, 이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병역거부를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한 사회 또는 국가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개별의 존재와 공동체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며, 그 사회가 얼마나 군사화되어 있는지 그 척도를 제시한다. 또한 강력한 국가안보에 기생하며 자본과 결탁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군수산업체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니어 ROTC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국가와 국가안보, 군수산업체, 군사화 사이에서 학교는 어떤 배움의 현장이며 과연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늬(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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