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19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8년 만에 공장으로 출근했다. 2016년 2월 1일 1차 복직한 18명에 이어, 1년 2개월 만에 이뤄진 추가 복직이었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단계적 복직에 대해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경영실적 개선효과가 미미함에도” 쌍용차 경영진이 노노사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회사의 ‘결단’을 극찬해 마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과 한숨의 시간들이 정말 이것으로 전부 다 끝난 걸까?
2015년 12월 30일, 쌍용차 사측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업노조 3자 간에 맺은 노노사 합의는, 물론 ‘해고노동자’라는 끔찍한 낙인을 떨쳐낼 가뭄 끝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해고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지난 시간들은 일터뿐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라는 공동체가 송두리째 무너져내리는 아픔의 나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서야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제 공장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복직자’와 ‘복직대기자’로 나뉜 채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회사가 제시한 복직 프로그램을 “합리적 처방”이라고 칭송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여러모로 석연치가 않다. 특히 쌍용차 경영진은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경영환경”을 앞세우며, 복직시한을 못박지도 않고 ‘단계적 복직’만을 고수했다.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에게 또다시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결국 합의서에 명시한 “2017년 상반기까지 전원 복직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시점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상당수의 해고노동자들과 희망퇴직자들은 여전히 ‘복직대기자’의 신분을 벗지 못하고 있다.
경영위기를 빌미로 복직을 차일피일 미루는 쌍용차 사측의 태도로 인해 2017년 상반기 내 전원복직은 사실상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극중 현우의 말마따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일제히 쌍용차 국정조사를 약속하고도 그 뒤 싸늘하게 외면했을 때처럼, 2014년 11월 대법원 해고무효소송에서 결국 패소했을 때처럼, 칠흑 같은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그들은 용수철처럼 다시 힘차게 튀어올랐으니까.
따라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손배가압류, 국가폭력의 잔혹한 실상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노동의 ‘적폐’들을 가감 없이 드러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아빠의 삶의 궤적이 현우에게는 더없이 자랑스러운 것이었듯, 함께 살기 위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분투가 우리 모두에게도 보배같이 값진 그 무엇이길 바란다.
임용현 (쌍용차범대위, 사회변혁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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