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아무 데도 없는 아이들

인권해설

노르웨이. 흔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갖춘 나라. 하지만 2011년 7월,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한 극우주의자의 테러 행위로 세계를 놀라게 한 나라. ‘두 얼굴’을 가진 이 나라가 영화 속에 등장한다.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노르웨이만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에게 실망과 배신감은 더 컸으리라. 2011년, 18세 이상의 난민들을 돌려보내는 정책은 결국 없어졌다. 하지만 이 해에 벌어진 끔직한 테러사건은 아마도 이러한 정책의 변화를 통해 다문화 사회로 개방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단적으로 보여 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일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조금 놀라울 뿐, 이 영화 속의 내용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주창하는 많은 정부와 기업은 지구의 하나됨이 자신들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올지만 생각한다. 자신들이 져야 하는 책임은 외면한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일할 기회를 탐색하면서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온 이주민들에게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 누군가 말했듯이,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노동자가 왔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 어디 있겠나. 이는 모든 상황에 나를 대신 끼워 넣으면 쉽게 이해가 간다. 내가 만약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착한 곳에서 ‘당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증거가 없다고 입국을 못하게 하고 바로 비행기를 태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보낸다면. 한 달 내내 쉬지 못하고 일했는데 몇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월급을 달라고 얘기했다고 사장에게 욕을 먹고 내쫓긴다면.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고 해서 간 곳이 농사를 짓는 곳이라면. 사장에게 구타를 당해 도와 달라고 찾아간 공무원이 그냥 참으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동네가 이주자가 많다는 이유로 범죄 지역으로 분류되고 그곳에 산다는 것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면. 갑작스런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세계가 뒤숭숭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죽는 날까지 평화로운 삶을 장담할 수 없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려 하기보다는 함께하라는 말, 연대 정신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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