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들에게 끌려나온 두리반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 농성을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살을 파고들었다. 이 사회의 ‘폐인’이 됐다는 고립감과 부끄러움은 농성장 바깥으로 출입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계의 압박 또한 강도를 더해갔다. 격절(激切)의 시간이 분명했다.
그 1년 6개월 동안 어둠의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수많은 기록영화를 보았다. 그건 하나의 역설이다. 뜻밖의 축복인가 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국가와 자본의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으니까. 망할 놈의 내 처지에 쫓겨난 자들의 서러움까지 겹쳐지면서 번번이 눈물을 쏟았다. 폭력의 야만성에 치를 떨기도 다반사였다. <상계동 올림픽>, <용산>, <국가는 폭력이다>, <쫓겨나지 않는 사람들>, <대추리에 살다>, <용산 남일당 이야기> 같은 작품들은 7년이 지난 여태도 생생하다.
마를렌 판데르버르프 감독의 <시장이 있던 자리> 역시 그런 류의 작품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7백 년 된 시장을 철거하고 마켓홀을 오픈하는 과정을 담았다니, 달리 어떤 짐작을 하겠는가. 예상했던 대로 영화의 도입부는 어두웠다. 지게차의 굉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그러나 곧 눈발 흩날리는 시장이 펼쳐진다. 과일전에도, 어물전에도, 야채전에도, 병전에도, 드링크 수레를 끄는 노점상에게도, 장보는 이들에게도 눈이 내린다. 고르게 내린다. 감독은 왜 굳이 눈 내리는 시장을 보여주는 걸까? 그는 시장상인들의 입을 빌려 답한다. “시장은 새와 같아요. 자연이에요. 가둬두면 죽는 거예요.”
시장에 내리는 눈처럼 자연현상은 선별적이지 않다. 눈은 갑남을녀에게 고르게 내린다. 하지만 로테르담 시의회에서 추진하는 마켓홀 사업은 예외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시는 인간의 삶을 자본의 논리로 규정하고 있다. 시는 마켓홀이 로테르담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면, 로테르담을 세계최고의 쇼핑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시장의 규모는 축소될 것이다”, “1백 명의 상인은 마켓홀에 입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입점할지 말지 지금 당장 결정하라”, 시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사업을 강행한다.
대를 이어 장사를 해왔으면 뭐하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죽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둥지에서 쫓겨나면 나머지 생은 어쩌란 말이냐? 상인들은 쫓겨나는 1백 명에 내가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우왕좌왕한다. 하물며 마켓홀이다. 시는 마켓홀에 입주할 상인들이 지켜야 할 지침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일요일 영업은 필수다. 문 여는 시간과 문 닫는 시간 또한 일정해야 한다. 시장을 새와 같다고 비유한 상인들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행운의 여신 덕에 마켓홀 입주가 결정될지라도 분명 새의 날개를 꺾는 지침이라는 얘기다.
두려움에 떨던 상인들은 하나둘 반발하기 시작한다. 대책을 논의하고, 거칠게 마켓홀 사업팀을 방문하기도 한다. 한국의 기록영화라면 이쯤에서 익숙한 폭력사태가 등장한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용역깡패들, 용역들을 보호하느라 도열해 있는 듯한 경찰들, 집게발을 앞세우고 가차 없이 철거를 강행하는 포클레인, <시장이 있던 자리>는 다행히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쉽게 포기하고 쉽게 순응하는 장면으로 채워나간다.
덕분에 마켓홀은 별다른 저항 없이 오픈할 수 있게 된다. 낡은 드링크 수레만이 오픈한 마켓홀을 오감으로써 한때 자연으로서의 시장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건 무척 기묘한 역설을 담고 있다. 언뜻 드링크 수레를 포착함으로써 <시장이 있던 자리>는 낡은 것과 새 것의 대비, 정체하느냐 변화하느냐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시장이 있던 자리>는 삶의 둥지에서 쫓겨난 1백 명이 넘는 상인들의 뒷얘기는 보여주지 않는다. 마켓홀에서 삶의 둥지를 틀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낡은 드링크 수레를 보여줌으로써 둥지에서 영영 쫓겨난 이들의 고단함을 여운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것이다.
유채림 (소설가, 두리반 주인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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