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슬픔과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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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이 넘는 대작으로, 란쯔만의 기념비적 영화 <쇼아>에 비교되어질 수 있는 <슬픔과 연민>은 2차대전 와중 프랑스의 당시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변절과 협력, 저항과 해방이라는 민감한 주제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대담들은 귀중한 자료화면들과 함께 논쟁적인 이 시기에 대한 회고 및 재해석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국시를 ‘자유, 평등, 박애’에서 ‘노동, 가정, 조국’으로 바꾸어놓았던 비쉬(Vichy) 정권, 독일의 반유태주의 법률보다 더욱 지독했던 프랑스의 당시 반유태주의적 법률, 어린이들을 학살수용소로 보내는 문제에 대해 결정내리기를 주저하는 게슈타포의 우유부단함에 대조되는 프랑스 경찰의 적극적 협력 등,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는 주제들이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작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1968년 5월 사태 이후 프랑스 내의 이차대전에 대한 해석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국민적 통합을 위해 드골이 주창하던 ‘프랑스의 영광’이라는 구호는 과거를 냉정히 직시하려는 움직임으로 대치된다. 레지스탕스의 영웅적 투쟁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비쉬 정권에 의한 대독 협력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로 바뀌게 되며, 이 역사는 차후 가장 수치스러운 프랑스사의 한 부분을 구성하게 된다. 분위기의 반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책은 미국학자 로버트 팩스턴(Robert Paxton)이 저술한 {비쉬 하의 프랑스La France de Vichy}이다. 팩스턴은 이 책 속에서 비쉬 정권이 1936년의 좌파 정권인 인민전선(Front Populaire)과 공화국에 복수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영화 쪽의 본격적 접근이 바로 [슬픔과 연민]이다. 이 영화를 통해 오퓔스는 맹목적 국수주의를 비판하면서, 신중한 기다림 속에서 매일을 영위하던 프랑스인들의 일상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솔제니친이 2백27명의 수용소 체험자들의 증언을 종합하고 있는 작품 {수용소군도}를 통해 소련 치하의 수용소를 다성악적(多聲樂的)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이 영화를 통해서도 유사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황 속의 인간’의 드러냄에 대단히 성공한 이 영화 속에서는 시종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으며, 각종 자료화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당시의 역사에 실증적으로 동참하게 해준다. ‘유태인 학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슬픔과 연민> 역시 유럽적 상황과 무관한 우리에게 시종 객관적 거리를 확보케 해주지만, 역설적으로 아직도 그 반성이 지지부진한 우리 자신의 과거 문제를 진지하게 반성케 한다. 독일 치하의 프랑스라는 무대 설정을 훨씬 뛰어넘어, 모순적이고 모호한 상황들로 점철된 이 영화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가 주창한 ‘회색지대’의 개념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을 통해 드러난 인간 군상의 적나라하고도 정직한 모습에 다름아니기 때문이고, 그 보편적 해석으로부터 우리가 늘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빈 /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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