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손으로 말하기까지

인권해설

농영화를 만드는 이유

우리는 인간의 진심으로 표현한다. 농인독립영상제작단 데프미디어다. “대화나 정보 전달은 수어나 활자를 통하면 됩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소리가 아닌 ‘눈으로 보이는 시각’입니다.” 소리 없는 영화란 농인의 정체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위한 자연스럽고 당당한 표현방식이자, 그들에게 높은 담장을 둘러친 이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음악이라도 있었으면 감상이 훨씬 편했을 텐데 영화에서 모든 소리를 빼버렸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근사한 사운드와 음악으로 영화를 즐길 때, 우리는 단지 눈으로 보기만 하니 즐거움을 느끼기는커녕 내용 파악도 힘들고, 그럴 때마다 “나도 대한민국 사람인가?” 하는 분노가 치민다. 그 분노가 수어로 만든 영화, 즉 소리 없는 영화를 탄생시킨 계기다.
-2016 함께걸음-

현재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 영상처리, 음향 효과를 결합한 구조체로서 관객들에게 흥미를 제공하는 매체다. 그러나 100년 전까지만 해도, 영사기 발명 이후 등장한 영화엔 소리가 없었다. 그 때 수어가 무성영화에 등장하는 사례가 많았다. 예컨대 나운규 감독의 <벙어리 삼룡이>라는 무성영화엔 수어의 일종인 홈사인(home sign)이 채택된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의 경우, 찰리 채플린이 출연한 무성영화에 농인 배우가 등장하였다. 찰리 채플린은 농인 배우로부터 수어를 동반한 연기 지도를 받아서 훌륭한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바뀌는 과도기에는 무성영화를 생계 수단으로 삼던 많은 농인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마지막 포옹>, <만종>, <아다다>, <고래사냥> 등, 외국에서는 <홀랜드 오퍼스>, <시크릿 러브>, <비욘드 사일런스>, <블랙>, <청설> 등, 농인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었다. 농인이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은 2005년 4월부터이다. 농인은 영화 분야에 관심이 있어 관련 교육을 받거나 영화 제작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려 해도, 의사소통의 문제로 종종 어려움에 부딪혀 영화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 고심하다가 농인끼리 자조 모임으로 시작한 농인영상동호회 ‘데프미디어’를 꾸렸다.

농인은 ‘보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에 담아 알리고 싶었다. 예술 분야에서 농인이 차별 없이 문화를 향유할 뿐만 아니라 직접 창작하기 위해서는 교육적인 제반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수어통역 바우처 등과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호소하곤 한다. 데프미디어는 지금도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농인에 대한 차별들을 개선하고자 영화를 구상하면서 <한국농역사>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박재현(데프미디어)

15인권해설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