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세월>

인권해설

자녀를 앞세운 비극적 사건의 유가족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상, 새로운 삶의 세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 집, 대화가 사라진 가족, 소원해진 친인척, 의미 없는 명절과 기념일,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하루, 삶과 일의 의미를 상실한 삶, 살아있음에 대한 구차스러움, 끊임없이 상상되어지는 자녀의 마지막…. 하지만 또한 살아있기에 일상은 또한 계속된다. 먹고 사는 일, 챙겨야 할 자녀, 돌봐야 할 부모,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죽음, 매해 돌아오는 자녀의 생일, 문득 스미는 웃음과 행복에 침투하는 죄책감 등….

진상규명을 위한 정치적 애도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자녀의 죽음 이후 유가족들이 마주해온 시간은 그동안 살아왔으며, 축적해왔던 경험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누군가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일상과 삶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듯, 자녀를 잃고 장사지내며 ‘사회적 상(喪)’을 치르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일상의 파괴와 일상의 유지, 재건을 동시에 경험해야 하는 중첩적 상황 속에서 비일상적이며 비동시대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1964년부터 2013년까지 50년간 10명 이상이 사망한 재난이 276건에 달한다. 반세기 동안 두 달에 한 번꼴로 대형참사가 발생하고, 유가족이 양산되어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재난참사 유가족의 삶은 제대로 조망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사건 직후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로서 회자되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라치면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상종 못 할 인간이란 사회적 오명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이들의 애도와 추모는 ‘빨갱이’로 매도되기도 했으며, 자녀의 죽음으로 생기를 잃은 삶은 무수한 ‘눈초리들의 감옥’을 경험하며 공동체와 사회로부터도 소외됐다. 상처받은 수많은 유가족이 침묵하고 자취를 감췄다.

재난과 상(喪)의 과정은 사회적이나 삶의 회복은 개인의 영역이라 치부하는 사회는 부정의하다. 자녀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과거로의 복귀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회복이란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닌 앞으로의 삶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회복과 제도개선을 통한 사회적 상(喪)의 완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희생에 대한 오랜 추모와 애도는 안전한 사회건설에 대한 공헌의 표현이자 재발방지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또한 유가족의 정체성으로만, 유가족다움으로만 유가족의 삶이 구성된다고 믿는 사회는 빈곤한 사회다. 수없이 무너짐을 반복하며 길을 내고 있을 유가족들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로, 다양한 욕구로 상실을 애도하고 상실 이후를 살아낼 수 있을 때야 사회가 존재한다 할 수 있다. 삶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저변의 인식변화가 필수적이다. 유가족의 삶을 옆에 두려는 부단한 노력, 교육과 접촉을 통한 만남, 유가족다움이 야기하는 폐해에 대한 지식의 향상은 유가족들의 삶을 위해서,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인 가해자 혹은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시도될 때, 우리는 사회의 재건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회적 치유가 시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해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경상국립대 학술연구 교수
┃416세월호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재난참사 유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인권기록활동을 통해 인권문제를 벼리며, 재난참사, 국가폭력, 소수자에 대한 기록과 연구를 해오고 있다.


*본 인권해설은 26회 인천인권영화제 “시간의 겹, 당신의 겹: 돌아보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인천인권영화제 www.inhuri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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