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섬이없는지도>

인권해설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리베카 솔닛)
한 곳에서 여러 땅을 밟고 사는 느낌,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느낌.(에밀리)
애초에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다.(그레이스 김)

<섬이 없는 지도>는 2018년 여름의 뜨거웠던 제주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서울에서도 9월과 10월에 난민 반대 집회와 환영 집회가 동시에 열렸고,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광화문을 메우는 것을 매일 지켜보아야 했다. 한국 사회에 난민이 정치적으로 등장하면서 인권과 인도주의의 간극을 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인권활동가로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야스민이 난민인정이 불허되고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게 된 이후 제주를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 가지는 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부터 과소인간이기를 명령받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제주에서 함께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기억하고 서울에서 난민인권운동을 하면서 제주에서의 관계를 미래의 약속으로 만들어낸다. 이걸 이렇게 함께 해낸 이들은 누구일까.

섬은 손쉽게 고립으로 은유된다. 하지만 섬을 다루는 지배의 방식을 보면 뭍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섬을 고립된 채로 남겨둘 필요를 느낀다. 쉬러 가는 곳, 보급 기지화하는 곳, 먼저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곳, 별도의 질서를 통해서 자본을 유입하도록 하는 곳.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그려지는 예멘 난민 환대 활동,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 제2공항 건설 반대운동은 단지 제주 이슈로서 이해될 수 없다고 하면서,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섬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요청한다. 이를 통해서 누군가의 삶이 뿌리뽑히고 있는지, 어떤 관계들을 갈라놓고 있는지, 반대로 누가 환대하는지, 누가 새롭게 정착하는지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운동이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장소와 몸이 만나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통해서 약속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여성, 퀴어, 정주민, 이주민으로서의 몸들이 시간차를 두고 어떤 장소에서 먼저 도착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서로의 정체성과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평면적인 지도에서는 도저히 표시할 수 없는 이 움직임들이 섬을 살고 있다. 주민운동이라고 부르기엔 충분치 않은, 어떤 장소에 살아가는 것으로서 운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배제되어왔던 존재들의 해방을 위해서 오랫동안 중요한 전략이 되어왔다. 특히나 여성과 퀴어들이 일구고 있는 평화와 환대, 국경을 넘는 연대, 반개발주의, 반폭력의 현장의 삶은 너무나 고대해왔던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타리(나영정)
┃퀴어활동가로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성소수자, HIV 감염인 난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서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이다.


*본 인권해설은 26회 인천인권영화제 “시간의 겹, 당신의 겹: 돌아보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인천인권영화제 www.inhuri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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