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계에는 3억 정도의 선주민 인구가 살아가고 있다.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이주에 뒤이은 세계 시장의 발전으로 이들의 삶은 황폐화의 길을 걸어왔다. 식민 전쟁과 질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토지와 자원을 빼앗겨야 했고, 오늘날 그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과 차별, 정치적 억압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볼리비아는 어떠한가?
과거에는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16세기 이후 남미는 서양의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초 라틴 아메리카 독립 운동 지도자의 이름을 따 볼리비아를 세웠으나 여전히 백인계가 지배하고 그들과 손잡은 서양 자본이 독점한 이 나라의 광포한 정치사는 인종적, 지리적, 민족적 다양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는 6백5십만이 선주민인 인디안이고, 30%가 혼혈인구이다. 그러나, 인구의 나머지 10%미만을 차지할 뿐인 백인이 볼리비아를 지배해 왔다. 게다가 볼리비아의 지리적 차이는 엄청난 지역 대결 의식을 낳아왔다. 볼리비아의 정치적 갈등은 동부 평야 지대의 백인 거주자와 안데스 고산 지대 인디언간의 분쟁으로 특징화된다.
볼리비아는 1825년 독립이후 50여년의 철권 통치를 겪었고 1879년의 태평양 전쟁 패배로 인해 형식적인 민주 제도를 맞게된다. 그러나, 그것은 주석 수출의 주도권을 쥔 대실업가들의 정부였다. 1952년 노동자와 농민을 주축으로 한 혁명의 기운은 구질서를 몰아내고 주석 산업의 국유화와 대대적인 농업 개혁, 보편적인 선거권을 선포한다. 10년 남짓했던 민주 개혁은 1964년 군부의 등장으로 끝이 났다. 1982년 문민 정부로 이행되기까지 군부 통치는 부패와 파벌주의, 광범위한 인권 침해로 얼룩져 있었다. 새 정권은 이전 군사 정권의 죄상을 조사하기를 거부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미군의 군사 원조를 받아 군부의 요구를 만족시켰으며, 무장 세력은 저지대의 마약 거래와 코카잎 생산계곡에서 날뛰고 있다. 이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군부가 복귀할 것이 염려되고 있다.
<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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