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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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정부는 경제성장과 빈곤퇴치를 명목으로 대대적인 기업투자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적토지양여(Economic Land Concessions) 제도를 운용하며 대규모 관광업, 농업 등에 투자하는 기업들에 최대 99년까지 국유지를 임대하고, 오랜 세월 그 땅에 정주하던 사람들을 내쫓는 것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기업에 임대된 국유지만 해도 캄보디아 전체 경작지의 50퍼센트 이상이며 이로써 강제퇴거 당하거나 위기에 놓인 캄보디아 주민은 42만 명에 달한다. 영화에 나오는 벙깍 호수는 2007년 캄보디아 정부가 상업문화관광센터 개발사업을 위해 기업(shukaku inc)에 133 헥타르(약 40만 평)의 땅을 임대하면서 매립이 시작된 곳이다. 4천 가구 이상이 살던 이 지역에는 지난 몇 년간 강제퇴거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겨우 100가구 정도만 남아 있다. 대다수 주민은 갖은 공격과 협박에 못 이겨 ‘토지소유권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불충분한 보상금을 받고 떠나거나, 황폐한 재정착지로 강제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퇴거에 반대해 지역에 남아 주거권 투쟁을 하던 이들은 군경에 의해 구타와 체포를 반복적으로 당하고, 주요 인물로 ‘찍힌’ 사람들은 날조된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벙깍 지역뿐 아니라 개발이 진행되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3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지금의 개발이 사회 재건과 국가 번영을 위한 길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비단 6~70년대 한국의 개발독재정권이 하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개발은 정치적으로도 ‘핫’한 이슈다. 다가오는 7월 총선을 앞두고 훈센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과 프랑스로 망명한 삼랑시 대표가 이끄는 야당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개발로 인한 토지분쟁과 강제퇴거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 벙깍 호수는 매립이 끝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역에 남아 터를 지키던 이들은 지난한 투쟁 끝에 훈센 총리로부터 호수 주변에 주택부지를 약속받았지만 이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권력자들만의 ‘뻔한’ 결말로 끝이 나지 않도록 이제 우리는 ‘뻔한’ 결말을 거부하고 인권의 언어로 ‘새로운’ 결말을 쓰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벙깍 호수의 메마른 물 위로 자본과 공권력의 폭력에 사라져 간 삶들과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울음에 응답해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 있으므로. 이정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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