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뿔’은 아프리카 대륙이 아라비아반도에서 인도양 쪽으로 코뿔소의 뿔처럼 솟아난 북동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지부티,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의 나라가 해당한다. 지역 내 국가 간 무역의 95% 이상이 비공식적이고 장부에도 잡히지 않는 가축을 거래하고 하니 특별히 유력한 산업은 없는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가축을 키우거나 낡은 배로 물고기를 잡으며 뿔의 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아마도 없었을 테고, 세계 많은 사람의 삶이 그렇기도 할 것이다.
느린 흑백 화면이 비추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들과 이웃 남자와의 대화는 몇 마디 안 된다. 쇠약해진 아버지가 먹을 약이 떨어졌고 주변에는 일거리도 없어 보인다. 이웃들은 하나둘 이 고장을 떠나고 마을은 폐허처럼 정지한 것 같다.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유럽 국가들은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의 뿔 바다에 독성 폐기물을 투기했고, 2004년에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가 유독 물질을 소말리아 해안에 퍼트리면서 여러 질병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나라든 소말리아 정부든 그들에게 이런 일을 충분히 설명해 주거나 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장면들은 사뭇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아주 특수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세계 곳곳의 자원 채굴지, 핵발전소의 피폭 노동과 주민들의 발병, 삼성 반도체에서 일어났던 백혈병 비극 모두가 같은 문제의 가지들이다. 그러나 우리, 특히 선진국 대도시 사람들은 일상에서 더럽고 위험한 것을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더럽고 위험한 것은 비정상이거나 극단이라고 여긴다.
2009년 국역 된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테드 스미스, 데이빗 A 외 지음, 공유정옥 외 옮김, 메이데이)라는 책의 영어 제목은 “Challenging the Chip”, 즉 ‘반도체 신화에 저항하기’라는 의미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이 산업이 한국 경제를 끌어나갈 것이라는 신화와 함께 이 산업이 깨끗한 첨단 산업이라는 신화가 강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공짜로 얻어지는 깨끗하고 좋은 것은 없다.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과 에너지의 피해자가 이 소말리아 사람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딘가에 우리는 부담과 위험을 안기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가해와 피해의 얼굴들이 실제로 누구인지를 밝혀내고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법 제도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존재와 권리를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길어 올릴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해법과 해결이 일대일로 맞아떨어지거나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만성적인 일이라는 인정도 회피해선 안 될 것이다.
당장은 보이지 않거나 떠올리기도 어려운 존재들을 생각하는 것은 우울하고 답답한 일이다. 우울증에 오래 빠질 필요는 없지만, 이런 환경과 인권에 관한 문해력과 감수성은 더욱 권장되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손쉽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조용히 애도한다. 이 표현 방식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조차 이해하거나 느껴볼 부분이다.
김현우(기후위기 비상행동, 탈성장 대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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