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뺴앗긴 목소리

인권해설

“처음 그들이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 그리고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항변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남긴 유명한 시의 일부분이다. 스리랑카의 언론인 라산타 위크라마퉁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사설에서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8일, 스리랑카의 사실상 유일한 독립 언론인 《선데이 리더》의 편집장이던 그는 출근길에 괴한 네 명이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가늘게 맥박을 유지하던 스리랑카의 언론 자유와 인권이 박동을 멈추는 순간이었다. <빼앗긴 목소리>는 라산타의 아내이자 동료 기자였던 소날리 사마라싱헤를 비롯해 스리랑카의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오늘날 맞닥뜨린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권력층의 추악한 얼굴과 내전의 참혹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들추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큐에 등장하는 언론인들은 피붙이 하나 없는 독일, 영국, 미국 등지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반면 갖은 협박과 납치, 고문, 암살로 언론인들의 입을 틀어막고 내쫓은 자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반군 동조자’, ‘테러리스트’, ‘반역자’의 딱지를 붙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된 스리랑카는 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 싱할라족을 상대로 11퍼센트의 타밀족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면서 26년간의 긴 내전을 치렀던 나라다.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란 명칭의 타밀 반군은 비록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체계적인 훈련과 현대식 무기를 갖춰 한때 북부와 동부 지역에 타밀 독립 국가를 수립하기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공격 전술에다 어린아이들까지 서슴없이 전투에 끌어들이는 잔혹함은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그에 맞선 스리랑카 정부군도 전쟁 범죄와 인권 침해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만 무려 약 10만 명, 그 가운데 절대 다수는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던 평범한 주민들이었다. 그랬던 내전이 정부군의 총공세로 2009년 5월에 드디어 기나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냥 막을 내리고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중요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내전 막바지에 정부군은 타밀족 수십만 명을 ‘사격금지구역’으로 몰아넣은 후 집중 포격했다. 이른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을 빼내는 전략’이었다. 그로 인해 내전 막바지 몇 달간 살해된 주민이 약 2만 5000명에서 7만 명 그리고 정부군에게 끌려가 지금까지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 공식 통계로 14만 6,679명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스리랑카의 언론인들은 바로 그런 잔인한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려고 몸부림쳤던 이들이다. 그 대가는 암살과 납치 그리고 타국에서의 기약 없는 유배의 나날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미리 써 놓은, 사실상의 유언장이 된 마지막 사설에서 라산타 위크라마퉁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종종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냐고, 그러다 목숨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나도 그걸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면 박해받는 사람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최재훈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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