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에서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호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는 스위스에 기반을 둔 해양굴착업체 트랜스오션 소유의 시추선으로, 사고 당시 영국의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에 임차된 상태였다. 20일에 일어난 폭발은 현장 노동자 11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하루 이상 지속된 화재 끝에 22일 시추선이 침몰하면서 대량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하루에 5000배럴 이상, 무려 2억 갤런(약 757,082,357ℓ)에 가까운 원유가 유출된 이 사고는 지금껏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비열한 에너지>는 ‘딥워터 호라이즌호 원유유출사고’, 일명 ‘BP 원유유출사고’의 전말과 그 여파를 다각도에서 면밀하게 파헤치는 장편 다큐멘터리다. 걷잡을 수 없는 화염에 불타는 시추선, 바다를 검게 뒤덮은 기름과 그 안에서 죽어가는 생명체들, 배와 경비행기가 동원된 진화 및 방제작업, BP의 책임을 추궁하는 국회 청문회. 영화는 도입부부터 간헐적으로 삽입된 뉴스 영상을 통해 거대한 재앙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한편, ‘재난의 스펙터클’에 묻혀 간과되기 십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루이지애나 지역공동체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고의 실체를 담아낸다. 인근 생태계의 심각한 오염과 파괴를 부른 원유 유출로 평생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온 루이지애나의 어부들은 생계가 막막해졌다. 해산물 관련 업체들은 망해갔고, 일을 찾아 타지로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화학 분산제부터 뿌려대는 근시안적인 방제작업은 환경오염을 가중시켰고,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지급되지 않은 BP의 정화작업 과정에서 유독물질에 노출된 작업자들은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겠다던 BP는 사고 해안 접근 및 촬영을 막는 등 대외적 이미지 관리에 주력하며, 제한된 일자리와 턱없는 보상금을 제시하는 회유책으로 주민들의 분열을 초래했다. 연간 20억 규모에 달했다는 수산업과 지역경제의 몰락도 몰락이지만,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정서적 고통, 지역공동체와 문화의 붕괴 등 결코 숫자로 치환될 수 없을 장기적인 피해를 어떻게 가늠하고 보상할 수 있을까? 피해의 실상을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한 BP의 행태와 이를 방치하는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맞서 공동체와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루이지애나주 주민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윤 추구에 눈 먼 거대기업의 무책임한 개발과 정치권력이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비열한 에너지>는 ‘태안유류유출사고’(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란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삼성중공업의 유류유출사고를 기억하는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더욱 여운이 길 작품이다. 2007년 사고 발생 후 지금까지도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한 태안 주민들의 고통과 싸움 역시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황혜림 (다큐멘터리 <산다> 프로듀서,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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