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에 대한 자료부터 ‘탈북청소년’에 관한 정보까지, 가능한 한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다. 탈북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전문가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검색할수록 막막해졌다. 수집 가능한 탈북민에 대한 정보는 ‘정부 정책’ 정도였기 때문이다. 탈북청소년의 경우는 더했다. ‘탈북청소년 교육 지원센터’에서 발간하는 통계 자료 외에 그들의 현실을 담은 자료는 거의 없었다. 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제목은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삭막한 정보의 바다를 뒤지다가 ‘셋넷학교’ 기획자이자 대표인 박상영 선생님의 글을 발견했다(https://brunch.co.kr/@eveningnamoo/14). 마침내, 탈북청소년의 언어로 표현된 그들의 한국 살이를 만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글을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박상영의 글에 따르면 2007년도 이후부터 사회생활을 하다가 한국을 떠나는 셋넷학교 졸업생의 수가 점점 늘었다고 한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난 학생들이 섭섭하면서도 걱정된 그는 무작정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서양으로 떠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자리를 잡은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북한에 대한 질문을 받을 걱정 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북한 사투리를 쓰고 북한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하다고,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학력이 없으면 능력이 소용없는 한국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경쟁을 견뎌야 하는 게 괴로웠다고. 여기선 내 학벌이나 출신을 물어보지 않아서 좋다고. 그래서 떠나오길 후회하지 않는다고. ‘탈남脫南’한 청년들이 한결 가벼운 얼굴로 말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나온 인터뷰부터 ‘셋넷학교’ 대표가 전하는 이야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일부 탈북민의 경험으로 한정될 수 없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주민의 경험을 닮기도 했고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어떤 청년들의 경험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안전한 집단과 안정된 거처를 쉽게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수’로서의 삶은 이주민의 경험을 닮아 있다. 이렇게 각자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은 서로 교차하여 만날 수 있다.
세상은 ‘소수’에게 안전한 거처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 이들을 향한 위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타자를 없애고 자신의 깃발을 세우는 대신 세상을 흘러 다니며 온갖 존재를 만나는 사람들. 벽을 넘고 경계를 가로질러 자신에게 적절한 장소를 찾아 움직이는 자들의 역동성. 이것이 소수의 힘이며 거처 없는 자들의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디아스포라는 땅 없이 떠도는 무리가 아니라 쉬지 않고 세상을 발견하는 존재다. 단단하게 굳은 땅을 휘젓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 가능성이다. 망설임 없이 ‘나’를 넘어서 낯선 것과 연대할 힘이다. 보이지 않을지라도 사라진 적 없었던 ‘소수’의 역사는 그렇게 계속되어 왔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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