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일간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우리가 옳다
– 그/녀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파문이 되어
2019년 한국 사회를 기억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은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일 것이다. 비록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들의 투쟁은 우리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도로공사의 타협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었으며, ‘혼자 먼저’가 아니라 ‘함께’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재판에서 승소를 한 사람이건 아니건, 입사 시기가 언제이건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기에 울림은 크다. 영화<보라보라>를 보면 노동자들이 숱하게 부대꼈을 갈등과 질문은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회사라는 간접고용을 거부하다
영화는 2019년 7월 1일부로 해고된 1,500명의 노동자가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했던 고공농성에서 시작한다. 그/녀들의 투쟁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불법파견에 대한 법정 소송부터 본격화된다. 정규직이었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선진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전원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요금소 수납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 사장은 대부분 도로공사의 명예퇴직자들로, 말이 위탁이지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을 받고 업무를 했다. 그러므로 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 자회사 정규직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대법원 판단 전에 불법파견 여지를 없애 법원의 결정을 무력화하려는 꼼수였다. 그/녀들은 1~2년 단위로 맺는 고용계약 때문에 영업소장들의 개인 업무도 해야 했던 억울함, 성희롱, 성추행을 감내해야 했던 모욕과 폭력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에, 자회사도 도로공사가 위탁계약을 끝내면 하루살이 목숨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자회사 입사도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간접고용이다. 1,500명의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하자, 도로공사는 6월 30일 집단 해고를 진행한다. 다수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법원 소송과 자회사 조치를 전후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회사에 맞서 싸운다. 어쩌면 노조활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기존의 노조운동이 관성적으로 반복한 각본에 얽매이지 않은 원칙과 동료애를 붙들고 싸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고공농성에서 오체투지까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은 몇 번의 변곡점을 그린다. 해고 후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캐노피 고공농성과 청와대 앞 집단농성을 동시에 진행한다. 도로공사는 공공기관이고 대통령이 이강래를 사장으로 임명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공공기관 자회사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소송인 719명)이라는 판결을 받고도 도로공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노동자들은 9월 9일부터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 싸움을 한다. 이것이 두 번째 변곡점이다. 자진 해산한 2020년 1월 30일까지 145일간을 농성 투쟁을 이어갔다. 싸움이 장기화되자 투쟁 거점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어가는 것이 세 번째 변곡점이다. 11월, 본사에 있는 조합원의 일부는 도로공사 관리감독주체인 김현미 국토부장관 사무실 및 더불어민주당의 여러 의원실을 점거하며 싸움을 전개한다. 동시에 정부종합청사에 거점농성장을 만들고 오체투지와 단식투쟁도 이어간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조합원 숫자는 조금씩 줄어간다. 그러나 그/녀들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이 옳기에,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자는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중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집단 해고에 대한 문제 해결 없이 사장직을 사퇴한다. 노동자들은 한 번 더 거점을 옮겨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 공천 반대운동과 낙선운동도 전개한다.
많은 싸움이 그렇듯 사측과 정부는 투쟁하는 사람들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대법원 판결자만을, 나중에는 2015년 입사자들을 분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함께 가야한다’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2월, 뒤늦게 소송한 노동자 3,869명에 대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의 판결로 모두 불법파견임이 분명해졌음에도 도로공사는 끝까지 노조와 합의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을 반영하겠다던 도로공사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되 현장지원직이란 새 직군을 신설해 기본급의 15%를 삭감했고, 고소고발도 취하하지 않았다. 1심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추후 판결을 보고 직접 고용하겠다며 해결을 미뤘다. 결국 노동자들은 사측의 제대로 된 합의 없이 긴 싸움을 마무리하고 복직해야 했다.
현재 그/녀들은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겪었던 모욕과 설움, 불안함이 현재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그녀들의 현재가 궁금하다. 그/녀들이 투쟁 과정에서 얻은 세상의 크기, 정의의 무게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도… 투쟁을 정리하던 날, 몇몇의 여성노동자들이 톨게이트농성장 옆에 있던 마사회 기수 고 문중원열사의 추모농성장에 들려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며 유족의 손을 잡아주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던진 질문은 아직도
그/녀들은 정규직으로 현장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노동구조는 비정규직 중심이다. 1998년 파견법이 제정된 후, 간접고용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부분이 여성과 장애인인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노동의 밑바닥인 비정규직은 ‘개인의 노력(능력)’ 여부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으로 인해 생겨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기관의 정규직 선발은 ‘공채시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 ‘경쟁신화’와 ‘각자도생’이 만연한 현재를 어떻게 딛고 가야할 것인가. 우리에게 설렘과 분노를 동시에 주었던 2019년의 외침, ‘우리가 옳다’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이유기도 하다.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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