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버블 패밀리

인권해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몇 가지 빈곤 지표가 있다. 한 가지는 50%에 육박하는 노인빈곤율, 또 한 가지는 소득이 낮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주거비를 지출하는 주거빈곤율이다. 언뜻 보기에 두 가지 사실은 병렬적이지만 구체적인 연결점이 있다.

이 두 가지 비참은 한 사회학자*의 설명을 통해 연결된다. 그는 한국의 독특한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자본주의 후발 국가였던 한국은 6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저축은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노동자들은 자산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중상위 계층 이상의 노동자들에게만 편중된 이득이었다. 자산 격차는 점점 커지고, 노동자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필요가 늘어나며 정부는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을 세운다. 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목표는 ‘내 집 마련’ 이었다. 자가소유자는 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집은 가장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었다. 새로 연 모델하우스는 인산인해였고, 수십 수백 대 일의 추첨을 거쳤다. 몇 배의 웃돈을 주고 사도 다시 몇 배로 불어났으니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전 재산을 집에 투자한 사람들은 집을 통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경로의존성’ 이라는 개념은 이 과정에서 복지의 확대보다 주택시장의 확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설명한다. 이미 정부 정책에 따라 집을 사고, 임대업자가 된 사람들은 복지와 연금 확대를 위한 세금인상보다 더 많은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지한다.
주택 보급률 108%에도 절반의 국민이 집을 갖지 못한 현실, 가장 많은 집을 가진 사람이 2291채의 집을 가진 현실은 어느 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선택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사회 공동의 산물이다. 90년대 간편한 주택공급과 노동자들의 내 집(건물) 마련을 위해 지어진 다세대주택과 상가건물은 정부의 전격적인 지원 속에 탄생했고, 누군가에게는 2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든든한 노후보장책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승자의 이야기다. 패자의 이야기는 다르다. 이농 정책에 따라 도시로 밀려든 사람들은 가난한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이 엉겨 살던 청계천, 한강다리 밑, 판잣집은 쉽게 헐렸다. 서울 잠원역 앞 비닐하우스에 살던 한 할머니는 살면서 수차례 철거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청계천 다리 밑에 살 때는 그냥 어느 날 집이 사라졌고, 여의도에 살 때는 포크레인이 집을 쿡 내리찍었다고 한다. 강남에 있던 집은 지게차에 밀려 납작해졌다.
평생 내 집 마련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거나 게임에서 패배한 노인들은 절반의 확률로 빈곤에 빠지게 되었다. 나라는 제법 발전했지만, 그들을 보호해 줄 튼튼한 사회안전망은 없다.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선택해오지 않았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면 문 여닫는 소리도 조심스러워한다. 행여 집주인을 만나면 보일러가 말썽이 났어도 불편한 기색을 숨긴다. 세입자 신세란 그런 것이라고 한다.
승자의 이익이 있는 곳엔 폭력이 상주한다.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발은 더 많은 이윤을 보장받기 위해 더 빨리 사람을 내쫓아야 하는 속도전이다. 대규모 건설이 공간과 수익성의 이유로 이뤄지기 어려운 요즘, 세입자를 내쫓기 위해 작은 상가 하나에서도 건물주가 용역폭력을 구입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이다. 뉴타운 건설 붐이 끝나도 우리의 욕망이 끝나지 않는 한 새로운 버블과 폭력은 이렇게 얼굴을 드러낸다.

재벌은 노동자의 저축을 지원받아 성장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고통 분담은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정리해고, 임금동결, 파견법 수용. 불안정한 노동형태는 일반화되었고 높은 가계 저축은 높은 가계 부채로 전환되었다.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한국 경제문제의 중요한 뇌관이 되었다. 건드리면 터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집값은 올라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공공주택 보급률은 OECD 평균 12%,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사회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의 절반으로 꼴찌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강남 집값은 여전히 불패의 역사를 쓰고 있다.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불패의 역사인가? 다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약속을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까? 20년, 30년 뒤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한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선택을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은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 -자산기반복지의형성과 변화>(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년, 김도균 저)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김윤영(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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