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백미러로 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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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이는 승합차에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익숙하던 삶의 공간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이들. 노인은 남겨두고 온 소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고, 어린이는 군 입대를 앞둔 아버지와 이별의 포옹을 나눈다. 긴 여행 중에 용변이 급한 고양이는 차가 멈추자마자 볼일을 본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의 얼굴은 우리의 시선을 전쟁 속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이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지 2년이 훌쩍 지났고,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약 천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천만이라는 숫자 뒤엔 두려운 얼굴로 승합차에 탑승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살던 비인간동물들의 삶, 그리고 파괴된 마을과 대지가 있다. 전쟁은 주로 뉴스에 등장하는 전투와 군인들, 폭격으로 가시화 되지만, 전쟁을 겪는 삶들은 다양하며 고유하다. 

피난민들을 비추는 승합차의 백미러는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여성들의 얼굴을 비춘다. 백미러에 등장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승합차에 타는 대신 강을 헤엄치거나 어둠 속을 걸어 피난을 떠난다. 이들에게 피난처는 허락되지 않는다. 징집을 피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 얘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18세에서 60세 사이 남성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50만 명의 추가 병력을 동원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해외에 거주하는 해당 연령 남성들에 대한 영사 업무를 중단했다. 징병가능한 연령대의 남성들은 해외 체류 중 여권이 만료돼도 갱신하거나 새로 발급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강제동원이 가능한 연령 역시 기존 27세에서 25세로 하향조정 되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병역기피’ 혐의로 고발된 사람들은 9천 명에 달한다. 루마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티사강에서는 최소 33명이 징집을 피해 이 강을 건너려다 익사했다고 전해졌다. 

전쟁의 승패를 묻는 순간, 어떤 이들의 피난에는 ‘병역기피’라는 이름이 붙는다.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파괴된 일상의 자리에 새로운 힘의 질서를 만든다. 전투력과 승리를 절실히 호소하는 질서 속에서, 피난민을 수송하는 승합차의 백미러는 징집을 피해 도망치는 남성들을 쉽게 비출 수 있을까. 전쟁의 잔혹함은 폭격에서 뿐만 아니라, 승합차의 백미러가 비추는 / 비추지 못하는 장면에서도 낱낱히 읽혀야 한다. 

승합차에 탄 노인은 뒷자리에 탄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부디 잘 살아라.” 

그의 목소리에 어린이들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2022년 2월 이후, 한국의 무기산업은 전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한국의 한 언론은 이를 보도하며 한국의 방산주를 ‘자녀에게 물려줄 주식’이라고 말했다. 이 이질적인 두 장면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겪는 전쟁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누군가에게 돈이 되는 시스템은 계속해서 죽음을, 피난을, 멸종을 만든다. 어린 삶들이 부디 잘 살기를 바라는 노인의 마음이 보편이라면, 물려주어야 할 것은 방산주가 아닌 ‘전쟁 없는 세상’이다. 

뭉치(피스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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